소설은 ‘형구네 고물상’의 아역배우 ‘진구’ 역이었던 ‘형민’이 38년이 지난 후 [그 시절, 그 사람들]이라는 프로에 출현하며 시작된다.
이 소설의 특징은 딱히 현재의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 담담함과, 서술의 시점이 여러 주인공으로 자유롭게 옮겨간다는 점이다.
표면적으로는 ‘형민’이 주인공이지만 내용 상 그렇게 중요한 부분이 아니다.
마치 기준점이 필요해서 그린 것처럼, ‘형민’은 서술 대상을 ‘형민’과의 관계로 알려주기 위해 주인공이 된 것만 같다.
형민의 어머니, 아내, 딸, 고향 친구, 회사 사람들 등등 시점은 수많은 사람들로 옮겨가 그들의 심리와 상황과 생각을 그려낸다.
마치 인물들이 서로 마이크 하나를 공중에 주고 받는 것처럼, 시점이 빠르게 전환되기도 한다.
인물들의 이야기는 거의 과거형이다. 그 대부분의 이야기는 딱히 행복하지 않으며, 죽음의 냄새를 풍기는 것들이 많다.
이 소설에서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사고를 당했는지 잘 모르겠다. 시점이 다양히 옮겨져서 그런 것일까.
내 주변에 세상을 떠난 지인은 적지만, 여러 명에게 그런 경험들을 묻고 기록한다면 더 많은 죽음을 담을테니까.
이 소설은 딱히 유쾌한 부분이 없다. 상냥한 사람 이 딱히 나오지도 않는다. 그 대신 평범에 가깝지만 음울한 이들이 등장한다.
이혼을 하거나, 회삿돈을 횡령하거나, 학교 폭력의 가해자가 되거나, 훔치거나, 다치거나, 죽거나, 잃어버리거나.
저런 음울한 일들은 전혀 해결될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과거에 일어난 그 상태로 그저 그렇게 존재하고 있다.
이렇게 비오는 날에 이런 책을 읽는 것은 어쩌면 내 삶 또한 음울하게 만들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사서 추천 소개에서는 ‘상냥한 사람’ 이란 그저 이 소설에 나오는 이들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언제인가, 상담은 그냥 옆에서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주는게 좋다는 말을 들었다. 사실 그 자체가 정말 어렵다.
상담은 대체로 안좋은 상태에서 하는 거니까. 이야기 속의 우울함과 부정적인 감정은 전염성이 높은 편이다.
듣기만해도 나도 점점 우울해지게 되는 법이다. 공감이 안된다하면 듣는 것이 지루해지기 때문에 그건 그것대로 별로.
친한 사람의 우울함도 들어주는게 쉬운 일이 아닌데, 소설 속 낯선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독자야말로 ‘상냥한 사람’ 이 아닐까.
어떤 우울한 사람에게 이 소설이 가상의 인물들과 서로의 상처를 나누는 방향으로 읽힌다면 좋다고 생각한다.
인생이 너무 너무 행복해서 우울함을 좀 느껴보고 싶은 사람에게도 나쁘지 않아보인다.
Books – 상냥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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