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은 생각하면 할수록 답답해진다. 내가 영어라도 좀 잘했다면 고민이 한결 가벼웠을까. 몇 번의 여행을 통해, 내 입맛은 완전히 한국인인 것으로 드러나버렸고, 향수병은 너무 강했다. 세계 어디에 있든 Amazon이 김치와 신라면을 배송해주기야 하지만 과연 그것만으로 괜찮을까.
지금 당장 이민을 가야만하는 이유도 딱히 없다. 런치 닌자에서 만난 외국인분은 Mountain View를 ‘지루하다’고 표현했다. 돈만 충분하다면 서울은 지루할 틈이 없는 최고의 도시다. 모든 생활 편의 서비스가 24시간 제공되는 편리하고 안전한 도시 서울. 그 중에서도 강남은 더욱 특별하다. 강남안에서만 평생을 산다고 제한하더라도,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 집과 직장이 강남에 있다면, 강남을 하나의 소국가라고 생각해도 좋을 정도다.
이런 멋진 도시를 두고 이민을 떠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를 살아가기에 큰 부침은 없다. 하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답답해지는 건 대부분 매한가지다. 결혼과 내 집 장만, 출산은 이제 정말 특권층에게만 허용된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 못한 이들이 자연히 멸종해버리는 것처럼… 노동에 대한 보상이 현재의 삶을 겨우 지탱할 정도의 수준이라면, 그 삶은 얼마나 나약하고 흔들리는 것인가. 일상의 사소한 욕구와 바람들을 억압당하고 사는 삶이란 도를 닦는 이보다도 괴로울테다.
나약하고 흔들리는 삶은 언제가의 ‘미래’에 무너지며, 대다수가 공포스러워하는 것이다. 사지가 멀쩡하다면, 젊을 때는 그런대로 먹고는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노후에도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까. 아파트 경비자리 하나에도 수백 명이 달려드는 세상이다. 단순 직종을 인공지능과 로봇이 갈아치우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세상이다. 늙거나 병들어서 직장을 잃는 순간 삶은 죽음이란 늪으로 빠져든다. 사람들은 이런 공포를 애써 외면하는걸까. 그래. 현실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바에야, 최후의 순간까지 문제를 외면하는게 나을수도 있다. ‘YOLO’나 ‘소확행’은 이런 니즈를 포착한 마케팅 상품이다. 하지만 미래를 꿈꿀 수 없는 현실을 바꿔야한다는 생각은 유행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다지 달콤한 것이 아니라 그럴까.
나는 미래에 대해 겁내고 있다. 상상할 수 있는 많은 불행들. 질병이나 장애와 같은 불행이 닥쳤을 때. 나라고 딱히 예외가 될 순 없다. 노후 파산만큼 무서운 일은 없다. 복지가 좋은 안정적인 선진국에서 여유로운 노후를 보내는 것. 그것이 내가 꿈꾸는 미래이자, 이민동기다. 하지만 확실한 점은 어디에도 유토피아는 없다는 점. 중산층 이하의 삶에서는 환경에 삶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점.
2019. 8. 10. diary (한글) 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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