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훌쩍훌쩍 흘러간다. 오늘은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회사 사람들과 보러가는 날이다. 나처럼 한 공연을 반복해서 관람하는 사람을 ‘회전문’이라고 부른단다. 그렇게 하더라도 돈이 아깝지 않다. 뮤지컬을 보고 돌아올 때마다 가슴이 뛰고 살아있는 느낌이다. 뮤지컬을 보러 간 분들 중 한 분은 노래를 정말 잘하시는데, 직장인 뮤지컬 동호회에서 공연 경험도 있다고 하신다.
나는 연기를 하지는 못해서 공연은 무리일 것 같다. 뮤지컬은 노래와 연기 모두에서 배역을 소화해 내는 것인데, 나는 노래에서도 그 배역에 잘 몰입하지 못한다. 나는 그저 노래로써 노래를 부르기 때문이다. 감정을 담거나 하기에는 실력이 너무나도 미치지 못한다.
5시에 타다를 타고 이동해서 대학로에 6시가 조금 못되어 도착했다. 가는 길에 내기를 하나 하기로 했는데, 다름 아니라 14주간 다이어트를 하는 일이다. 나는 10kg를 빼기로 했다. 여기서 10kg를 뺄 수 있다면 어마어마한 발전인데 과연 가능할지 모르겠다. 일단은 해보기로 했다. 공연 시작이 7시 30분이라 그 전에 저녁으로 닭볶음탕을 먹었다. 좀 매웠지만 물을 먹진 않았다.
공연은 1막이 1시간 20분 정도 되고, 15분을 쉬었다가 45분 정도 2막을 공연한다. 중간 쉬는 시간에 캔맥주를 하나 마시러 갔다가 늦게 돌아오는 바람에 2부 첫 곡을 보지 못했다. 그래도 공연장 밖에서 듣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관객은 적었다. 오늘은 대학로에 돌아다니는 사람 자체가 적었다. 대학로도 없어지는 날이 올까. 처음 공연을 본 사람들은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하긴 시대상은 달라졌는데, 대본은 그대로 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 시대상을 간직한 뮤지컬이니까. 대본집과 가사집을 샀다. 소중하게 간직해야지. OST를 사려고 했지만 더 이상 팔지 않는다고 한다. 더 늦기전에 중고나라에서 구해봐야겠다.
오늘은 수능 시험이 있는 날이다. 수능 때만 되면 춥다고 하는데, 정말 어제와 오늘의 온도차가 심하다. 어김없이 오늘도 수능 날의 뉴스 기사가 올라온다. 수능 시험 성적을 비관해서 자살한 학생. 현역 수능 때의 나도 비슷한 마음을 가져본 적이 있어 남일같지 않다.
지금와서 느끼는 점은 수능을 잘 보더라도 그 후의 인생이 망하는 방법은 꽃길처럼 아름답게 깔려있다는 사실이다. SKY를 나와도 취업이 안되면 말짱 꽝이고, 폐인이 된 사람들도 많다. 취업까지 잘 했지만 사업이나 주식으로 돈을 말아먹고 자살한 사람도 많다. 그 외에도 일이 안풀려서 소문속에서 사라진 사람들도 많다. 우리나라의 성장기와 지금의 온도차는 매우 극명하다.
학벌의 값어치라는게 없다시피한 세상이다. 그래서 좋은 학벌을 가진 사람들도 계속해서 경쟁한다. 좋은 대학을 나와서 로스쿨이나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려고 하고, 대학원을 가기도 한다. 스펙의 초인플레이션. 학벌은 그냥 그 많은 스펙 중의 하나다. 그것 하나가지고 성공한 삶을 살려는 생각은 버려야한다.
노력으로 성공하는 세상이 없어졌다고 못하지만, 안정적으로 그 궤도에 오를 수 있는 방법은 확실히 없어졌다. 열심히 노력하고 경쟁해서 안정적인 궤도를 통해 억대 연봉자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일 년새에 몇 억씩 올라버리는 집값을 어떻게 감당할까. 결국 리스크를 감수하고 사업을 성공시킬 재주가 있는 자에게만 자수성가의 문이 열려있다. 그게 아니라면 남을 등쳐먹거나 하는 수밖엔 없다.
자신이 순수한 실력만으로 상위 0.1% 이상에 올라갈 수 없다면, SKY에 목매는 것보단 차라리 지방 국립대에 진학하는게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지역인재 선발은 이 선택을 한 이들에게 훨씬 덜 치열한 경쟁으로 더 좋은 보상을 돌려주는 제도다.
고향이 서울이 아니라면 나쁘지 않은 판단이다. 문화생활은 주말에 KTX를 타고 올라와서도 할 수 있다. 직장인 동아리나 클럽은 어차피 결혼하면 갈 시간이 없다. 구태여 가고 싶다면 역시 KTX를 타고 주말에 오면 된다. 굳이 서울을 택한다면 그 나이에 취업이 되었을 지도 불분명할테니.
2019. 11. 14. diary (한글) 뮤지컬 지하철 1호선, 2020학년도 수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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