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대학에서 특강을 하는 날이다. 학생들의 진로탐구 멘토링 중 하나로 여러 과에서 재직 중인 선배들과 일부의 퇴직 동문을 초청해 진행하는 행사다. 학교에서 근무 중인 동기에 물어보니 딱히 준비할 것 없이 오면 된다고 해서 정말 그냥 갔다. 참 멍청하다. 막상 수업시간이 다가오니 매우 막막하다. 질의 응답으로 1시간을 보낼 수도 없는 일이고, 회사에 대해서 알려줄 수 있는 내용이 그렇게 많지도 않다.
같이 발표를 온 본청 외사과의 동기가 PPT와 스크립트를 준비했다는 말을 들었을때 ‘아이고 난 참 노답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뭐 그래도 강의실에 크롬이 안되는 걸보니 열심히 만들었어도 못 열었을거다. 강의는 입학에서 퇴사까지의 과정과 지금 회사에서의 업무 문화를 설명했다. 사실 그냥 인생썰을 풀고 돌아온게 전부다. 이런 이야기나 해주다니 앉아계신 분들의 시간을 낭비해서 너무 미안하다. 심지어 빨리 끝나지도 않았다.
두 조직은 설립 목적과 성격이 완전히 다르고, 문화의 차이도 그 부분에 상당한 영향을 두고 있다. 조직 밖의 조건을 살피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어떤 사람이며 어떤 삶을 원하는지 성찰하는게 중요하다.
환경은 변한다. 지금 좋다고 소문난 것을 학생 때부터 준비하면 아무리 못해도 4년 이상이 걸린다. 로스쿨을 준비한다치면 아무리 빨라도 5년이 걸린다. 학년이 낮을수록 그 기간이 길어지고 상황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사실 그 미래를 예측하고 움직인다는 것 자체가 도박에 가까운 일이다. 그러니 가장 많이 검증된 곳으로 가려는 경향이 높을 수밖에 없다.
결국 인생은 운이다. 성공한 사람이 독특한 인사이트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 인사이트라는 것도 실패했다면 공상으로 불리기에 딱 좋은 것들이다. 어떤 자기계발서에서 본 것처럼 노력을 통한 준비에 기회라는 운이 반드시 필요하다.
저녁엔 오랜만에 동기들을 만나서 저녁을 함께 먹었다. 졸업하고나니 동기들 얼굴 보기가 쉽지가 않다. 지방에 있는 동기들은 이런 기회로 만나는게 아니면 정말 보기 힘들다. 막 육아를 시작한 동기들을 만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작정하고 가족 여행을 따라가서 옆 방에 숙소를 잡고 우연히 만난 것처럼 꾸며내지 않는 한 같이 여행 가는 건 엄두도 못낸다.
그래도 이런 것들이 이제는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으로 보인다. 가족이 주는 행복은 다른 것들에서 얻는 것만큼 자극적이진 않을지 몰라도, 훨씬 안정적이고 지속적이다. 결혼한 동기도 친구도 점점 늘어가고, 젊을 때 우리는 좀 개노답이었는데 이제 나이를 먹고 있는가보다.
2019. 12. 13. diary (한글) 경찰대학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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