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자녀를 낳게 되거나,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게 된다면 ‘착하게 살아야 된다’는 말을 해주는게 좋을까? ‘착하다’는건 어떤걸까? ‘바보’나 ‘욕심이 없다’와 같은 표현들이 ‘착하다’는 표현과 다른 점은 주체가 능력 유무다. ‘착하다’는 성품이 좋다는 말이지 그 대상이 능력이 없거나 사리 분별력이 없다는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착한’ 주체는 착한 것과 나쁜 것을 분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순진한’ 주체와 구별된다. ‘순진한’ 주체는 그 구별을 하게 되는 순간 ‘나쁜’ 주체로 변할 가능성이 있는 상태다. 반면 ‘착한’ 주체는 이미 분별이 가능한 상태에서 선한 것을 택한다. 어떤 행동이 자신에게 주는 득과 실을 뚜렷하게 알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한 것을 택한다.
‘착한’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능력이 필요하다. 자신의 의지에 반해 희생을 강요받는 이들은 착하다고 볼 수 없으며, 사리 분별 없는 상태에서 선한 행위를 하는 이들은 착하다고 볼 수 없다. 그들은 속았거나 착취당했다고 보는게 옳다. 상황에서 자신의 행동을 선택할 권한과 능력이 있고 그 결과에 대한 계산도 정확한 주체들 중에서 이타적인 행위를 자발적으로 택하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착하다’고 볼 수 있다.
‘착한’ 주체가 항상 착할 필요는 없다. 그들은 자신의 신념에 따라 언제 누구에게 ‘착한’ 주체가 될지 정할 수 있다. 자신을 해하는 사람 또는 악인에게 잔인한 행동을 한다고 해서 그들이 ‘착한’ 주체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들의 신념이 보편적인 시각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 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여기까지 정리해보면 ‘착한’ 사람은 주어진 상황에서 계산을 해볼 때 내가 득이 될 수 있는 상황을 취하지 않고, 이타적인 행위를 순수하게 자신의 의사로 행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굶주린 이에게 자신의 버스비를 내어주고 집까지 걸어가는 사람은 착한 주체가 될 수 있고, 자기가 얼어죽는지도 모르고 남은 옷가지마저 벗어주는 사람은 그저 바보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동화책을 비롯한 많은 매체들은 ‘희생=착함’의 단순 관계를 주입시킨다. 이런 교육은 착한 것을 멍청한 것으로 인식하게 만들고, 사람들에게 착하게 살면 바보라는 인식을 가지게 만든다. 또한 착한 이미지를 가진 사람에게, 무조건 적인 희생을 바라거나 만만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분위기를 조성시키고 그렇지 않을 경우 그를 위선자로 바라보게 만든다. 이런 프레임은 착한 이들을 멍청이로 바꿔버리는 조롱과 다름없다.
착한 사람이 많은 사회라는 것은 바보같은 인간들이 많은 사회가 아니다. 사리 분별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 많고, 그런 많은 사람들이 이타적 행위를 자신들의 가치로 삼으면서 약자에게 선하고 부조리에 맞서 싸우는 건전한 사회를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라면 과거의 나에게 또는 자식에게 착한 사람이 되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2020. 2. 26. diary (한글) 착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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