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글에서 수업을 듣다가 영알못이 읽을만한 책을 추천해달라고 해서 받은 책 중 하나다. 생각보다 내용이 긴 소설이라서 바로 시도했다가는 답이 없을 것 같아 번역본을 먼저 시도했다.
번역본도 내용이 길어 몇 시간을 쭉 읽은 후에야 겨우 끝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제 영어본을 읽을 수 있을까. 난 좀 더 얇고 간단한 것을 생각했는데.
소설의 주인공은 ‘스카웃’으로 소설의 도입부에는 6살이다. 번역 때문인지는 몰라도 말투가 나이에 비해 어른스러운데, 친구를 때리거나 연극 놀이를 좋아하고 공포스러운 모험을 좋아하는 행동은 또 나이에 잘 맞는 것 같다.
내용이 중반부에 들어서기 전까지 소설의 중심 주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냥 평온하고 단순한 성장소설처럼 주인공의 일상이 작은 사건들과 함께 그려진다.
‘인종차별’이라는 주제를 본격적으로 드러내면서부터 소설은 빠른 속도로 전개된다. 역사적인 인종차별 사건들이 소설의 배경인 1930년대보다도 뒤라는 것을 감안할 때, 주인공의 아버지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은 대단히 선구적이었던 것이다.
갈등의 중심이 되는 ‘강간 사건’의 재판은 소설의 가장 많은 부분이 할애되는 구간이다. 그 당시의 재판은 배심원제도에 따라 평결이 좌우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결국 피고는 피해자와 목격자의 진술만으로 유죄가 확정되고만다.
그 당시의 다른 재판들이 어떠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지금처럼 CCTV나 제대로 된 과학수사가 없던 시절이기에, 다른 범죄들에 대해서도 피해자와 목격자의 진술에 의존해서 유죄평결이 내려졌는지 모르겠다.
소설 속 주인공의 아버지는 당시로서는 선구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으며, 여러 상황에 대해 놀라울만큼 차분한 태도를 보여준다. 이것들은 자신이 세운 나름의 원칙을 지키려는 행동으로 보이는데, 마지막 장의 살인사건에서 범인을 놓고 보안관과 설전을 벌일 때는 좀 갑갑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시대가 옛날인만큼 현대 시대를 지배하는 많은 것들이 없다. 인터넷, TV, 스마트 폰 같은 것들이 없던 시절이라 아이들이 바깥을 쏘다니고 이웃간 교류가 활발해 옆 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도통 동네에서 본 적이 없는 부 래들리 같은 이웃의 모습이 저 당시에는 기이하지만 지금은 당연한 것처럼.
소설이 쓰인 이후로도 수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 인종차별은 여전히 사회에 남아있다. 지금은 인종차별보다는 인종혐오가 더 적절한 표현으로 보인다. 중국발 코로나 바이러스가 터지면서 유럽에서는 동양인 혐오가 매우 심해졌으며, 우리는 그들이 정부의 통제를 따르지 않는 모습을 보며 미개하다고 비웃는다.
인종이 개인의 품성이나 능력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지역이나 국가, 인종에 대해 깊은 정서적 유대감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올림픽이나 월드컵 결과에 환호하고 지역 연고 야구팀을 응원하고 해외에서 활동중인 선수의 외신 평가에 자랑스러워한다.
같은 집단에 속한 구성원들 사이에 동질감과 유대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이런 의식이 참 좋긴하지만, 그것이 집단 밖의 사람을 배척하거나 다른 집단을 혐오하는 용도로 쓰일 때면 과연 득이 실보다 많은지에 대해선 의문이든다. 물론 이런 집단마저 없는 세상이라면 모두가 평등하다기 보다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투같은 폭망한 세상에 더 가깝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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