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한글)

2020년 2월 16일 일요일 (가상의 회고록)

가상의 회고록

이 글은 크리에이터 클럽 글쓰기 주제인 ‘인생 마지막 순간의 다이어리’다.

길이가 있는 모든 것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그 길이가 얼마든지 시간은 부지런히 움직여 모든 존재는 소멸의 순간을 맞는다. 나의 시간에도 예외는 없어 이제 곧 영원한 안식이 나를 찾아올 것이다.

지나온 인생을 돌아보기에 남은 시간이 영화 엔딩 크레딧만큼 짧다.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어둠속에서 빠르게 떠올랐다가 저편으로 사라져간다. 수많은 주연과 수많은 조연들과 수많은 엑스트라들에게 나는 무엇이었을까.

내 삶의 시작은 흔들림과 불안으로 가득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다행히 나는 운과 실력과 노력으로 긴 시간의 터널을 지나 마침내 원하는 곳에 도달했다. 돌아보면 이 시기에 얻은 것들이 참 많다. 물질보다는 삶의 영역에서 나는 무럭무럭 자랐다.

인생은 앞으로만 흘렀다. 모든 현재와 남은 미래는 주어져 본 적이 없는 순간들. 또 다른 인생이 시작되었고, 나는 반복적인 것보다는 새로운 것을 사랑하기 위해 어딘가로 떠났다. 나는 남의 영화를 부러워하지 않았고,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인생에 모두 담았다. 미래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그 순간 의미있고 행복한 것들을 있는 그대로 즐겼다.

계속해서 시간은 흘렀고 점차 함께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자유와 책임 중에서 책임의 비중은 조금씩커졌고 나는 새로움보다는 반복적이지만 안정적인 일상에 머무르기로 했다. 이전보다는 심심했지만 즐거움과 행복이 새로운 것에서만 나오는게 아니라는 것도 알게됐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나보다 남의 성장에서 더 큰 재미를 느꼈다. 남아있는 생이 나보다 훨씬 긴 사람들에게 기회와 도움을 주는 일은 그 자체로 재미있었다. 화면의 중심에 서 있던 나는 조금씩 스크린의 가장자리로 자리를 옮겨갔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맞이했다.

인생이 영화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흥행한다면 속편이 만들어질테니까. 하지만 이대로 편안히 쉬는 것도 좋겠다.


2020. 2. 16. diary (한글) 가상의 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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