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한글)

2020년 3월 12일 목요일 (인생의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

크리에이터 클럽에서 글쓰기 주제로 나온 삶의 ‘인생의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에 대한 글쓰기다. 모임 참여는 하지 않았다.

위기라는건 규모가 크기도 하고 작기도 하고, 당시엔 알지도 못하다가 나중에 돌아보니 알게되는 것들도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내 삶은 목표가 없었을 때는 그 자체로 위기였고, 그 목표가 생긴 후에는 그대로 살지 못하는게 위기였던 것 같다. 이런 위기들 속에서 나는 혼자서 빠져나온 적은 거의 없다. 나에겐 항상 그 상황에서 뭔가의 핵심이 되는 ‘키’를 주는 인물들이 반드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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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 교육열도 없는 동네에서 주변에 도움될만한 인물이 하나도 없었다. 미래에 대한 어떤 고민도 하지 않았다. 학원 선생님 덕분에 컴퓨터라도 꾸준히 배우다가 올림피아드를 시작하게 되어 경시 수학을 조금 알게 되었다. 이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공부를 한 번도 제대로 해보지 않았을 것이 확실하다.

05 ~ 08

선생님의 역량과 학원의 인프라는 부족했다. 내가 천재였다면 그런 건 상관없었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우연히 알게된 학교 친구에게 한 달 동안 배워 올림피아드를 준비했다.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전국대회를 나가면서 눈이 트였다. 공부에 경쟁심이 생기고 구체적인 목표가 처음으로 생겼다. 수능 준비 과정에서도 이 친구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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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수능날에 고꾸라져 재수를 했다. 집에서 재수를 했는데, 같이 운동을 다니던 친구들 덕분에 우울증 없이 지낼 수 있었다. 그 전까지는 혼자 있으면 우울증이 심했는데, 이 시기를 기점으로 우울증이 없어졌다. 이 시기의 우울증은 정말 심해서 극복하지 못했더라면, 나는 자살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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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점수가 애매하게 잘 나와서 가고 싶던 대학을 포기하고 하향지원을 더 썼다. 김밥공장에 친구랑 알바를 하러 가는데, 친구가 하는 ‘난 성적이 안돼서 못쓰는데 넌 기회가 있는데도 왜 하지 않냐’는 말을 듣고 그대로 돌아와 다시 지원한 후에 다시 집에서 논술을 준비했다. 그리고 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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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 싶던 대학은 어처구니 없는 사정으로 가지 못하고 전혀 엉뚱한 대학에 입학했다. 최악의 대학문화를 가진 이 곳에서 어떻게 4년을 살까 싶었다. 인생에 정말 희망이 없고 가장 죽고 싶은 1년이었는데, 이 때 챙겨준 사람들이 참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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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쯤 겨울방학에 한 라섹이 부작용이나서 실명 위기에 놓였다. 이 상황으로는 퇴교가 확정이고 미래도 없을테니 시력이 남아있을 때 얼른 자살해야겠다 생각할 때 동기 한 명이 대학병원 의사를 소개시켜주었다. 여자친구가 손을 잡고 대학병원에 끌고가줬다. 6개월 정도 치료를 받아서 다행히 어느 정도 선에서 퇴화가 멈췄다. 결국 다시 안경은 써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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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학년 여름. 졸업과 임용이 다가오면서 남은 인생이 원치않는 방향으로 고정될 것이라는 공포를 느꼈다. 대학원 위탁 파견에 선발되면 2년을 더 벌 수 있었다. 작년까지 학점 순으로 선발하던 걸 올해 부임한 학장이 방식을 바꿔버리는 바람에 가능성이 생겼다. 내 학점은 하위권이었기 때문에, 나는 추천서와 경력사항으로 어떻게든 뒤집어보려고 했다. 감사하게도 일곱 분이 추천서를 써주셨고 나는 2년을 더 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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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조직으로 돌아왔다. 2년의 시간동안 내가 딱히 이룬게 없다. 이제 군복무와 함께 일을 시작해야만 했다. 기동대는 성적순으로 배치되었기 때문에 내가 고를 수 있는 곳이 그다지 없었다. 딱히 희망이 없던 와중에 내 고향에서 근무하던 동기가 나에게 귀띔을 주었다. 일이 거의 없는 곳이지만 오지로 인식되어 기피지역인 곳. 퇴직 예정이던 동기가 기다려준 덕분에 나는 그 곳에 들어가서 2년을 더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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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할수록 내가 될까하는 생각만 늘고 자신감도 없어졌다. 그렇게 살던 중에 중대장님이 나에게 극대노를 시전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평소에 아주 친했던 분이지만 덕분에 나는 그날 퇴근해서 바로 이력서를 넣었다. 너무 오랜 시간을 준비했다. 떨어진다면 운이든 능력이든 내 길이 아닌거겠지. 어쨌든 홧김에 나는 지원을 했고, 합격했다.

합격을 해도 바로 올라갈 수 없었다. 고향에서의 결혼생활이 확정되어 있었고, 친가 처가 아내를 모두 설득해야했다. 다행히 아내가 이해해주고 부모님들의 설득을 도왔다. 그래서 나는 정말 오랜시간을 돌아서 그렇게 원하던 삶에 도착했다.

마침

수많은 순간들 중에 한 순간이라도 중요하지 않았던 순간이 없다. 매 순간에 크고 작은 위기가 있었고 그 모든 위기들에서 항상 나를 도와주는 누군가가 있었다. 그 누군가가 없어서 바뀌는 인생의 한 박자는 인생 전체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었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런데 나는 이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표시하면서 살고 있나. 그렇지 않은걸보니 난 딱히 좋은 사람이 아닌 것 같다.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표현은 완곡하고 난 참 개자식이라는 말 정도는 해야 맞는 것 같다. 적어도 받은만큼은 돌려줬어야지. 이제라도 알았으니 되돌려야겠다. 나는 위기를 항상 누군가의 도움을 통해서 극복해왔다. 인생은 운이 거의 전부다.


2020. 3. 12. diary (한글) 인생의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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