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이 겪는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좋은 인재’를 찾기다. 인재 영입에 자원을 쏟아붓는 대기업도 어려움을 겪는 마당에 미래가 불확실한 스타트업은 오죽하겠나. 아무리 ‘우리는 유능한 인재를 원하고 있어요’라는 채용 공고를 걸어놓는다고 지나가던 인재가 그걸 보고 지원할리가 없지. 현실은 지원자가 없을 수도 있고, 지원자가 있다고 해도 그 속에 인재가 없을 확률이 높다.
그래서 지금은 취업난이자 구인난의 시대다. 안정적인 대기업에 몰리는 지원자만 인산인해를 이루기 때문이겠지. 너무 많은 지원자가 몰리는 나머지 인사팀 전원이 가족과 친척까지 동원하더라도 넘치도록 쌓인 자소서를 반도 읽지 못할거다. 당신만의 스토리, 개성을 어필할 수 있는 시간은 적어도 서류전형에서는 주어지지 않는다. 사실 당신 인생에 관심을 가져서 당신을 채용할 건 아니니까. 그냥 그 시대에 맞는 인재를 확률적으로 가장 많이 확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사람들을 걸러내는 것일뿐.
수작업으로 자소서를 검토하던 시절에는 ‘학벌’이 가장 빠른 필터링 조건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SKY를 시작으로 서성한 중경외시 같은 서열이 정해지고, 대기업 임원의 출신 대학 비교표가 돌아다녔다. 언론에서도 매년 대학 순위를 발표했다. 서울대 출신도 9급 공무원 시험을 보는 지금도 그 서열은 공고하게 남아, 아직도 온라인에서는 그 서열이 인생의 시작과 끝인 것처럼 콜로세움을 열어대는 사람들이 많다.
학벌은 지원자의 성실성이나 지적 능력 둘 중 하나는 보증할 수 있었다. 이 시기엔 딱히 스페셜리스트가 필요하진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 제너럴리스트들은 보통의 업무를 평균 이상의 수준으로 성실히 수행해내면서 근대 한국과 대기업의 발전을 이끌었다고 한다. 낮은 학벌의 대학에도 인재들이 있긴 했지만 그건 마치 채산성 없는 광산을 파내려가는 일로 치부되었다.
좀 더 시간이 지나고서 ‘창의적 인재’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산업 구조가 변하면서 더 이상 시키는대로만 잘하는 모범생들이 그렇게 많이 필요해지지 않은 탓이다. 기업들이 새로운 영역에서 미래의 먹거리를 발견해야한다는 말을 달고 살게 된 것도 이쯤이라고 한다. 그럼 ‘창의 인재’는 어떤 사람들인걸까. 사실 우리가 이미 다 알고 있는 것들이다.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방학때 해외 여행을 하며 새로운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경험을 쌓은 사람. 목돈을 모으면서 영어도 배울 수 있는 워킹 홀리데이를 다녀온 사람. 스마트 폰 앱을 개발하거나 스타트업을 창업해 본 사람. 국제 봉사활동을 다녀온 사람. 국토 대장정을 다녀온 사람. 각종 공모전에서 수상한 사람들. 그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시도들을 처음으로 해 본 사람들이다. 정성 평가로 정량 평가를 넘어선 사람들.
이들의 취업 성공 스토리가 알려지면서 이것들은 리스트가 되었고 그래서 더 이상은 특별하지 않게 되버렸다. 아니 이제는 너무 진부해졌다. 참 슬픈 일이다. 취업을 위해 여행을 다니고 남을 돕고 폐업이 확정된 사업을 한다. 마치 블랙 스완이 되지 못한 백조들이 진흙에서 몸을 부비는 것 같은 현상이다.
스펙 경쟁이 소모적이라는 비판이 커지고, 기업들도 그것이 허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학벌 주의의 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이때부터 ‘문제 해결 능력’이라는 개념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삼성의 SSAT나 NCS 시험으로 대표되는 이 역량은 연습을 통해서도 점수를 올릴 수 있지만 기본적인 두뇌의 능력이 필요하다. IQ 테스트와 비슷하기도 하지만 좀 더 영역이 다양하며 현실에 가까운 시험이다. 향후 몇 년 후엔 공무원 시험도 PSAT로 대체될 것이라고 한다.
이 방식 또한 완벽하지는 않다. 이 시험 또한 회사 업무 능력을 보장하진 않는다. 다만 이 방식을 통해 선발된 인재들은 지식을 습득하고 습득한 지식을 업무에 적용하는 속도가 남보다는 빠르다. 애초에 시험의 설계 목적이 그렇다고 한다. 학벌 때문에 능력이 가려진 인재들을 커버할 수 있는 좋은 제도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업무 능력을 보장하지 못한다.
그래서 내부 직원의 추천을 받거나 헤드헌팅 사이트를 통한 채용이 요즘 주목받고 있다. 기업 공채는 서서히 사라지고 수시 채용이 보편화되면서 위 방식들이 다 의미가 없어진 탓이다. 기업은 채용 공고를 내고 내부 직원은 지인을 추천할 수 있다. 추천된 사람이 합격할 경우 회사는 직원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직원은 해당 포지션에 대한 정보를 상세히 알 수 있어서 적합한 사람을 찾아내기에 더 좋을지도 모른다. 좋은 사람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는 발상에 근거한 듯 보인다. 나도 이걸로 부수입을 땡겨볼까 하는데 쉽지 않다. 주변에 전공자가 없기도 하고, 면접 준비 과정도 긴 편이라 쉽게 권하기 어렵다. 참 좋은 사람 찾기 어렵다.
2020. 3. 19. diary (한글) 어디 좋은 사람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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