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선생님께서 어제 말했던 작가의 글 몇 개를 메일로 보내주셨다. 그 중 몇 개를 읽어 보고 난 후에 내가 내린 결론은, 이 작가의 글을 흉내내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글은 내가 받아들인 세상을 기록한 결과다. 글에 담긴 세상의 풍경은 내가 마주하고 부딪히고 느끼면서 감각한 것이다. 빛이 필터를 통과하는 것처럼, 세상은 우리가 가진 고유한 감각과 감성의 세계를 통과하며 어떤 인식으로 변화한다. 사진이 렌즈빨인 것처럼 섬세하고 좋은 감각 체계는 훨씬 많은 것들을 포착해낸다.
세상을 받아들이는 나의 감각이 작가와 닮아있지 않는 이상 똑같은 세상을 그려낼 재료를 나는 영원히 가지지 못할 것이다. 부단히 노력을 통해 마치 성격이나 습관을 만드는 것처럼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받아들일 수는 있겠지만 선천적인 예민함과 감수성을 후천적으로 얻는 것은 다시 태어나는 것 만큼이나 불가능해보인다.
표현력은 인식을 글로 표현하는 과정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어떤 비유를 해야 가장 좋을지 모르겠지만, 인식의 결과를 재료라고 한다면 표현력은 요리 실력이 아닐까 싶다. 예전에 읽은 수필에서 어떤 작가들은 적절한 표현을 찾기 위해서 사전을 뒤지면서 고민을 한다고 들었다. 이것마저 타고난 사람들은 가끔 문법의 틀이나 일상적인 표현에서 벗어남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기 그지 없는 표현을 지어내곤 한다.
천재와 경쟁하려고 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다. 나는 빠르게 단념을 하고선 그냥 평소에 쓰던 글의 방식대로 계속 글을 쓰기로 생각했다. 사실 내 글의 성격도 오랜 시간을 거쳐오면서 많이 변했다. 그 소재나 표현이 현재 삶의 모양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시간이 흐르며 내 인생을 또 변화할 것이고 그에 따라 내 글 역시도 다른 모습으로 바뀔 것이니 굳이 부자연스러운 글을 만들지는 말자.
2020. 4. 22. diary (한글) 흉내낼 수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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