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생각해도 스스로 게임을 절제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롤 계정을 삭제했다. 여기에 낭비할 시간을 투자했더라면 이미 끝났을 다른 일들이 너무 많다. 다른 사람들이 업무 시간 이후에도 일 생각이 난다고 할 때 나는 전혀 그런 문제가 없었는데, 게임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스스로에게 정말 한심한 일이다. 한 달 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 3주 이상을 저녁이 없는 것처럼 인생을 살았다. 게임에 중독된 인생은 소모적이고 기억에 남지도 않는 삭제된 인생이다.
교보문고 전자도서관에서 4월 30일까지 무료로 책을 빌려준다길래 2권을 신청했다. 그 중 한 권이 도리스 레싱이라는 작가의 ‘19호실로 가다’라는 단편 모음집이다. 가장 앞의 작품은 ‘최종 후보명단에서 하나 빼기’ 라는 제목을 가졌는데, 주인공 남자는 극단적으로 찌질하게 묘사되고 여자는 또 비정상적으로 보살같이 묘사되었다.
내가 아는 가장 찌질한 남주인 ‘찌질의 역사’에 비빌 정도로 주인공은 병신같은 내적 심리를 가졌고 그에 맞는 병신같은 행동을 해댄다. 그냥 대놓고 강간범인 이 남자를 신고하지 않는 여자도 대체 뭔가 싶지만 그에 비견할 수 없게 남자의 행동은 구역질이 난다.
퇴근한 아내에게 이 내용을 말해주니 그 작품이 혹시 페미니스트 문학같은게 아니냐고 했다. 두 번째 단편을 읽어보니 아내의 말이 맞는 것 같아 작가에 대해 검색해보니 역시나 그렇다. 노벨상을 받은 작가 답게 그 표현력이나 심리 묘사가 정말 현실과 같이 생생하다.
소설의 남자 주인공들이 극단적이라고는 말했지만 인생을 살아보니 저보다 훨씬 더한 놈들도 있어서 뭐라 할 말이 없다. 책은 1994년에 발간되었고 소설이 쓰인 것은 그보다도 훨씬 전의 이야기니 최근의 기류에 편승하려는 작품이라고 할 수도 없다.
이 책을 읽고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네이트 판 글을 읽었을 때 빡치는 기분이랑 같다. 굳이 찾아서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을 듣는 느낌이든다. 그 나쁜 기분이 절정이 되었을 때 소설은 거기에서 그냥 끝나버린다. 차라리 찌질한 주인공들을 벌하거나 모욕을 주면 좋을텐데 그냥 끝나버리니 고구마만 한 움큼 쏟아진다.
4월 30일을 기한으로 잡은 앱 개발의 진도가 너무 늦어 강도를 높이기로했다. Weekly로 하던 미팅을 Daily로 바꿔서 어떻게든 기한 내에 데모가 나올 수 있도록 만들려고 한다. 이걸로 딱히 돈을 벌건 없지만 사람을 모으고 일을 진행하고 제품을 내놓는 프로세스를 해보는 경험 자체가 값지다고 생각한다.
회사에서 일하다가 개인 프로젝트를 하니 속도가 훨씬 빠르다. 다른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코딩 시간보다 설계나 QA 등의 시간이 개발 시간의 비중이 높은데 개인 프로젝트에서는 이런게 모두 생략되기 때문이다. 프로젝트가 커지면 여기에도 설계와 QA 비중이 더 늘어나겠지만 이 정도 규모에서는 딱히 필요하지 않다.
2020. 4. 23. diary (한글) 롤 삭제, 19호실로 가다, 앱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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