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일주일 전. 가정의 달 5월 그리고 황금연휴를 맞이해 아내와 나는 ‘호캉스(호텔 + 바캉스)’를 꿈꾸며 숙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예약을 잡기는 늦어도 한참 늦어서 좋아보이는 숙소들은 이미 예약이 다 차 있는 상태였다.
널찍한 수영장이 딸려있고 바다가 보이는 전망의 더블베드 침대가 있고 조식을 먹을 수 있는 호텔.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조건이었다. 조건을 만족하는 방 중에서 남아있는 방은 해운대에서 딱 하나가 남아있었다. 요즘이 바가지지만 간신히 구한게 다행이다. 하마터면 연휴를 집에서 보내야했을테니.
11시쯤 해운대에 도착했다. 로비에서 짐을 맡기고 곧장 점심을 먹으러갔다. 저녁 뷔페를 먹고 싶었지만 예약 가능한 곳이 없어 점심 뷔페를 배터지게 먹고, 저녁을 간단히 먹는 쪽을 택했다. 웨스틴조선호텔은 층수가 낮고 연식이 좀 되어보이지만 위치가 그 모든 단점들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우리는 까밀리아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운 좋게 창측에서 바로 앞의 해변과 바다를 바라보면서 밥을 먹었다.
바깥 날씨는 좀 더운 편이었다. 바닷물도 그렇게 차갑지 않은지 발을 담그면서 노는 사람들도 많고, 헤엄을 쳐서 부표까지 다녀오는 사람도 있었다. 해변에서는 어떤 가족이 텐트를 치고 있었는데 뭔가 잘 안되는 모양이다. 땡볕에서 20분 정도 힘들게 텐트를 접었다폈다 하는 아저씨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곧 아이가 생기면 저기에서 텐트를 치고 있지 않을까. 꼭 원터치 텐트를 가지고 가야지 생각을 했다.
체크인까지는 시간이 좀 있었기에 우리는 그냥 식당에서 계속 시간을 떼웠다. 바깥에 나가도 딱히 할만한것도 없고 날씨도 좀 더웠다. 그렇게 시간을 떼우다보니 배가 다시 좀 고파져서 한 그릇을 더 먹기도 했다. 점심 뷔페는 딱히 별스러운 메뉴는 없었고 맛도 평범하고 음식 가짓수도 많진 않았다. 그래도 역시 뷰는 정말 좋았다. 뷰가 정말 깡패다.
우리가 묵을 호텔은 오늘 모든 객실이 꽉 찼다고 한다. 수영장에 들어갈 수는 있을까. 썬베드에서 맥주를 마시고 싶은데. 체크인을 하면서도 불안불안하다. 예상했던대로 수영장은 터져나간다. 썬베드는 사람들이 올련놓은 수건들이 쌓여 주인이 있는지 이미 객실로 가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커플보다는 아이를 데리고 온 부부들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아서 키즈풀에 온 것 같다. 낭만을 둘째치고 일단 이곳은 고요함마저도 없다. 고통이다.
이 호텔에는 수영장 외에도 야외 스파가 따로 있다. 스파는 혹시나 상황이 나은지 둘러보러 간 아내에게서 여긴 좀 나은 것 같다고 메시지가 왔다. 여기에도 썬베드는 여유가 없지만 그래도 수영장보다는 좀 덜 북적인다. 빠르게 카톡 프로필에 업로드할 사진들을 찍어내고 맥주를 하나 주문해 마신다. 350ml에 16000원은 좀 너무한 가격이다. 경치값이 있으니 한 잔까지는 괜찮다. 더운 날씨에 온탕에 있으니 너무 덥다. 그래도 바람이 세게 불어 반신욕을 하기엔 좀 괜찮다. 시간이 좀 더 흐르고 이곳에도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우리는 북적임을 피해 객실로 돌아갔다.
이 호텔도 바닷가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어 경치가 깡패다. 오션뷰 객실에는 테라스가 있어서 해변을 내려다보며 시원한 바닷바람과 함께 맥주를 마실 수 있다. 객실 냉장고에서 생수를 제외하곤 돈을 지불해야하는터라 우리는 편의점에 들러 저녁거리와 마실 것들을 샀다. 좋은 경치를 보면서 맥주를 마시니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10분 정도 있으니 추워서 문을 닫고 들어갔다. 아직 춥다.
밤이 되고 주변이 고요해지니 사방에서 소음이 들려온다. 방음이 잘 안되는지 아이들이 외치는 소리들이 쩌렁쩌렁 울려댄다. 좀 화가 나지만 어쩌겠는가. 애들이 통제가 된다면 왜 애들이겠나. 우리가 아이를 가져도 똑같을텐데. 어릴 적 나도 저보다 더 했으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는데. 이런 생각을 하는 중에 시간은 오후 11시를 향해 달려가고, 아이들의 외침은 조금씩 잦아들고 피곤에 찌든 우리는 그보다도 더 빨리 잠에 들었다.
2020. 5. 1. diary (한글) 호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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