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나이를 먹었는지 주변에서 부고 소식이 들려오는 빈도가 슬슬 잦아진다. 20대에는 부고를 듣는 경우도 적고 들려오는 부고도 조모상이나 조부상이 대부분이었는데. 30대가 되고나니 모친상이나 부친상도 들려오기 시작한다. 자연히 부모님의 건강에 대해서도 걱정하게 되고, 부모님이 영원히 내 곁에 있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조금씩 실감하게 된다.
나는 부모님과 서먹한 관계로 성인이 된 이후로 딱히 큰 교류없이 가끔 고향에 내려갈 때나 명절에 인사를 드리는 정도로 지내고 있다. 어릴적엔 딱히 기억나는게 없을만큼 특별한 추억이 없고 그 중에서도 기억하고 싶은 일이 딱히 없다. 스무 살 이전의 나에겐 집은 불만가득한 공간으로 하루빨리 서울로 도망가고 싶은 생각이 내 공부의 주된 동기였다.
어른이 되고나서 돌아보니 삼시세끼 더운 밥 잘 챙겨먹고, 비싼 학원은 다니지 못했지만 집에서 재수를 하는 동안 인강을 듣고 문제집을 살 정도의 지원을 받았고, 집이 딱히 화목하진 않았지만 부모님이 이혼한 것도 아니며, 가끔 심하게 혼나기는 했어도 가정 폭력은 없었고,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부모님이 모두 부지런하고 도박쟁이나 알콜 중독에 빠지지 않고 착실하게 살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생각보다는 괜찮았구나 생각한다.
그럼에도 청소년기에 형성된 부모님과의 어색함은 어른이 된 지금도 남아있다. 사회에 나오고 난 이후에 만난 친구들 중에는 부모님과 친구처럼 지내는 사람도 많고, 가족 여행을 일상적으로 다니는 사람도 많다. 가족 여행을 전혀 가보지 못한 나로서는 한편으론 부러우면서도 어색하게 느껴진다.
부모님과의 관계가 그나마 괜찮아진 것은 결혼 후부터인데, 순전히 아내 덕분이다. 아내가 나보다 우리 부모님을 잘 챙기기 때문에,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부모님을 뵙고 잠깐이나마 이야기를 나누게된다. 언젠가는 가족끼리 해외여행도 한 번 가보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한다. 우리 가족은 가족 여행을 가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우리 가족이 다 함께 웃었던 적은 내 기억에 존재하지 않는다. 내 결혼식 때도 내 동생이 딱히 웃질 않았을테니 뭐 정말 없는 셈이다. 내 동생이 재수에 성공하는 때가 그때가 될까. 내가 살을 빼서 더 건강해지고, 동생이 재수에 성공해서 연말에 가족이 함께 해외여행을 가서 사진을 찍으면 그때는 행복한 모습이 사진에 담길까. 상상을 해보면 행복한 모습일 것 같기는한데 왠지 사망플래그를 꽃는 말인 것 같아서 그만 할란다. 그냥 화목안하고 오래살란다.
2020. 5. 8. diary (한글) 화목한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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