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으로 내려가는 날이다. 침대, 세탁기, 옷장 그리고 내가 구매한 냉장고, 전자렌지가 모두 사라진 방이 썰렁해보인다. 이 방도 곧 단기 풀옵션으로 바뀔 것이라고 한다. 한 몇 달 윗집이 시끄러웠던 걸 빼면 그렇게 나쁘지 않았던 곳이다. 그 전에 살았던 방과는 비교할 수도 없고.
다시 서울에 올라왔을 때 그 때도 회사 근처에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도보로 출근할 수 있으면서 값도 적당하고, 벌레가 없으며 너무 협소하지 않고 시끄럽지 않은 지상층의 방을 찾을 수 있을까. 월세가 150만원을 넘는 프리미엄 오피스텔이라는 것들도 우리 동네 20만원 방보다 품질이 떨어지는 걸 보면 불가능할 것 같다.
용달차는 아침 일찍 도착했다. 오늘은 땀을 흘리기 싫어 기사님 외에도 인부 한 명 더 요청했다. 전동 책상만 아니었다면 내가 직접 옮겼을텐데. 고향에 돌아가서도 이삿짐 정리를 해야하니 지금부터 체력을 뺄 필요는 없다. 서울에 온지 겨우 2년이 지났는데, 캐리어 하나에 들어가던 짐이 용달차 반을 채울만큼 불어났다.
용달차를 보내고 완전히 텅 빈 방을 사진으로 남기고 집을 나섰다. 이제 서울에는 내가 돌아갈 집이 없는 셈이다. 기분이 이상하다. 항상 걸어다니던 동네인데도 이제 내가 여기선 돌아갈 곳이 없다는 게 참 어색하게 느껴진다.
기차를 타고 고향으로 간다. 스무살 때는 그렇게 고향을 떠나고 싶었는데 이젠 서울이 그만큼 질려버렸다. 북적이는 사람들의 파도와 말도 안되는 물가가 짜증이 난다. 문화와 의료 인프라만 제외하면 서울은 어떤 강점도 없는 곳이다.
고향에 돌아와 곧장 짐 정리를 시작했다. 고향 친구 두 명이 이사를 도와줘서 다행이었지 아니었으면 오늘 안에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고생한 친구들에게 밖에서 근사한 식사를 대접해야하는데, 코로나 때문에 배달을 시켜먹기로 했다. 집이 다 정리되고 나면 추석 쯤에 집들이를 해야겠다.
새 집은 정말 좋다. 단지와 쇼핑몰이 지하로 연결되어 있고 그 옆에 대형 마트와 지하철이 붙어있다. 자체 산책로도 갖추고 있고, 위치도 조용한 곳에 있어 단지내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 그러고도 전세가가 3억이 안된다. 이것도 최근의 부동산 열풍 때문에 1억이 오른 가격이다. 서울의 동일 조건의 아파트와는 10개 정도의 가격 차이가 난다. 마치 물가가 저렴한 타국에 온 듯한 느낌이다.
2020. 8. 22. diary (한글) 이사가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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