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정리

2022년이 참 빠르게 지나갔다. 매년마다 느끼지만 계획보다 중요한 것은 실천이다. 실천하지 않은 것은 기억조차 나지 않기 마련이다. 올 한 해의 성적을 매겨본다면 B+ 정도가 아닐까 싶다.

미국 적응

연초부터 쉽지 않았다. 새해 첫 날부터 자동차 키 배터리가 방전되기도 하고, 심장이 아파 응급실에 가서 내 키랑 비슷한 혈압을 보기도 했다. 아내가 도착하기 전까지 어떻게든 존버를 하자는 생각이었지만, 심장이야 내 마음대로 되는게 안되니 매일 밤마다 불안했다. 혈압약은 한 번 먹으면 평생 복용이라기에 먹질 않았다. 혼자서 보내는 미국 생활의 가장 큰 문제는, 문제가 생겼을 때 의지할 가족이 없다는 점이다. 특히나 미국 시스템에 낯설다보니 한국에선 쉬운 문제가 여기에서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이 모든 것들이 사실 극심한 스트레스였다.

출산

아내가 온 이후로는 그나마 생활이 안정되었다. 나도 어느 정도 생활에 익숙해졌고, 아내에게는 이것저것 좀 알려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의료 보험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응급실 경험을 통해 확실히 이해해서 출산 비용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출산과 관련한 정보들은 아내가 다 해결했기 때문에, 나는 좀 부담을 덜 가질 수 있었다.

출산도 큰 문제없이 잘 끝났고, 우리 아이도 건강하게 잘 태어나서 올 한해 아무 문제없이 잘 커가고 있다. 초반에는 수면이나 수유 시간이 불특정했기에 고생이 많았지만, 50일 이후로 점차 나아져서 이제는 살만한 수준이 되었다. 새로운 가족이 생긴 것도 신기하고,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는 말이 무엇인지도 실감한다.

아이가 태어난 후에는 어딜 같이 놀러가는 일이 참 어려워진다. 원래 여행을 잘 가지도 않았지만, 꼭 여행이 아니라 짧은 외출이라도 항상 그렇다. 아이가 아직 면역이 없는 것도 이유 중 하나다. 그러다보니 어딜 가기보단 누굴 초대하는 것이 좀 더 나았다. 한국에선 집들이를 빼곤 해본 적 없는 초대를 여기서는 외식보다 많이 했다. 외식보다 신경쓸게 많고, 뒷정리도 귀찮지만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출산 휴가

살면서 이렇게 긴 휴가를 보낸 적이 없었다. 올해 구글의 출산 휴가 정책이 바뀌면서, 출산 휴가가 18주까지 늘어났다. 출산 휴가는 휴가는 아니라지만, 아이가 50일이 넘어가면서 밤에는 잠을 잘 자주었기에 여유 시간이 좀 생겼다.

이 때만 하더라도 NFT 시장이 그렇게 폭삭 망하진 않았기 때문에, NFT 게임 앱 아이디어를 가지고 직접 앱을 하나 만들기 시작했다. 대충 2달 정도의 기간이 걸렸던 것 같고, UX는 Fiverr를 통해 찾은 외주 디자이너 팀을 통해 해결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좋은 외주 팀을 찾는 방법과 외주 팀을 관리하는 법을 조금 배웠다. 앱은 최종 출시 했지만, 출시 이후에 경기가 급속히 냉각되었고, 시장성이 있다고 생각되지 않아서 서버를 닫아두고 있다.

한국 여행

한국으로의 가족 여행 일정이 내년으로 밀리면서, 나 혼자 한국을 잠시 다녀오기로 했다. 관광으로 찾은 서울은 변한건 거의 없었고, 달라진 점이라면 택시 잡기가 힘들고 어느 식당이든 종업원 수가 부족했다는 정도다. 서울의 모습은 참 분주하고 생각보다 탁트인 하늘 구경하기가 힘들어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골목이나 오르막길이 많아 풍경은 미국 동네가 훨씬 좋구나 생각도 들었고, 날씨도 후덥지근했다. 하지만 모든게 편리하고 안전한 점은 여전히 서울이 최고다.

만날 사람들은 거의 다 만나고 돌아올 수 있어서 좋았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물리적인 만남은 필수적인 요소라고 생각한다. 공동 작업이나 회의는 온라인으로 충분히 가능하지만, 사람과 관계를 맺고 지속하는 과정에서는 오프라인이 필수적이다. 공동의 목적이 확실한 경우라면 예외로 둘 수 있겠지만, 보통은 친했던 관계라도 오래못보면 서먹해지기 마련이다.

팀 이동

팀 이동은 출산 휴가를 앞둔 시점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일하는 방식이나 문화가 그렇게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프로덕트가 과연 유망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있었고, 설사 성공하더라도 내 커리어에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복직 몇 주전부터 다른 팀에 조금씩 지원을 했는데, 시기가 참 안좋았다. 막 Hiring Freeze가 시작되었고, Area 120이 프로젝트 수를 절반으로 갑자기 줄여버린 시점이었다. 대부분의 Head Count가 회수되었고, 열려있던 Job Posting들도 상당수 닫혀버렸다. 그나마 열린 것들은 보통 1자리에서 정말 많으면 2자리의 HC를 가지고 있었다.

이 시기의 내부 경쟁률은 보통 10~30대 1정도라고 했다. 예전에는 매니저와 팀 매치 콜을 한 후에 거의 확답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매니저 / 스킵 매니저 / TL 이렇게 세 번이상 면접을 보기도 했다. 그 외에도 이전 작업 코드를 질적으로 양적으로도 확인하는 등, 팀 이동 난이도가 확연히 다르게 올라갔다. 결국 나는 복직 한 달 이후에나 다음 팀을 찾을 수 있었는데, 그것도 순전히 운이었다.

그래도 수많은 지원과 면접과 탈락을 반복하면서 알아낸게 있다. 우리 회사에 어떤 어떤 팀들이 무슨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지. 좋은 팀과 매니저는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 그런 팀들의 경쟁률은 얼마나 치열한지. 팀 매칭을 위해서 내가 어떻게 커리어를 관리해야할지. 이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딱히 물어볼 사람이 없는 나는 스스로 해보면서 배워야만했다.

문득 비경찰대 출신들이 경찰대 출신들을 부러워하는게 이런 점 때문인가 싶기도 했다. 어떤 포지션에 대한 정보를 동문들 네트워크에서 쉽게 알아낼 수 있는 것. 추천을 해줄 사람들이 있다는 점은 정말 큰 어드밴티지가 아닐 수 없다. 그렇지 않는 사람들은 직접 찾아야 하고, 스스로 자신을 증명해내야한다.

커리어

기술적으로 대단한 발전을 이룬 것은 없다. 일하는 방식에 있어서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늘어났다고 본다. 영어 실력도 정착 초기와 비해서 늘었다. 영어로 말하는 것 자체에 대한 공포가 많이 줄어든 점이 크다. 모르는 단어나 표현은 여전히 안들린다.

팀에서 내가 능력을 얼마나 보여줬는지는 알 수 없다. GRAD 평가는 내년도 3월에나 나온다고 한다. 팀을 나간다고 했을 때 매니저와 스킵매니저는 내가 팀에서 High performer라고 말을 했지만, 팀을 나간다고 하니 그랬던 것이라 확신한다. 스스로 생각하기엔 여러 Dependency나 Product decision 때문에 생각한 것의 반도 개발 속도가 안나왔다.

팀 사람들과 그렇게 친해지진 못했다. 언어보다 문화의 차이를 따라잡는 것이 훨씬 어렵다고 본다. H1B나 OPT로 일을 하는 사람들과 친해지는 것이 오히려 쉬웠다. 가령 여러명이서 밥을 먹으며 영어로 대화하는 것이 나에게는 참 어려운 일이었는데, 이런 점은 비영어권에서 온 다른 이민자가 아니면 공감하기가 참 힘들다.

그래서 새로운 팀에선 최대한 극복해보려고 한다. 새로운 팀에는 성인 이후에 이곳으로 넘어온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그나마 소통하기가 편한 축이다.

리더십을 키우는 것은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지만 책으로는 안될 것이라 생각한다. 경험하면서 배워보고 싶어 소규모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했다.

스타트업

실리콘밸리로 오면 그냥 될 줄 알았지만, 실제 생활은 한국보다 단조로울 수 있다. 직접 사람을 찾고 움직이지 않는다면 확실히 그렇다. 회사와 집만 반복하며서 열심히 사는 삶은, 한국의 어느 공단 기숙사의 외노자의 삶과 완벽하게 같을 것이다.

나는 언젠가 스타트업을 시작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그 고민을 위해서 현재로서는 스타트업 필드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글을 읽고, 커피챗이나 하고 종종 면접을 보고 있다.

이 고민을 위해서는 좀 더 많은 정보를 모아볼 필요가 있다. 스타트업이 성공하면 100억을 벌 수 있다고 할 때, 동일한 액수를 그냥 회사를 다니면서 벌 수 있다면 굳이 위험을 무릅쓸 이유가 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인사이트

기억력이 나쁜 대신 뭔가 배우면 새로운 것을 생각해낼 수 있는 창의성이 내 강점이라고 생각했다. 올해 내가 새롭게 읽은 것이나 감명받은 것이 뭔지 돌아봤을 때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

이런 인사이트가 없다보니, 사람들을 만날 때에도 그 사람들에게 형식적인 질문이나 뉴스 이상의 토픽을 던질 수 없었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관점에서 다른 사람들과 전혀 다를게 없는 평범한 사람처럼 느껴졌을 것 같다.

가족

올 한해 가족과 함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았다. 인생에는 나중으로 미루면 영영 되찾을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 보통은 커리어나 가족 중에 하나를 희생한다고 하지만, 나는 둘 다 챙기고 싶다. 방법은 잘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