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USPS 이메일과 USCIS 앱을 열어보면서 기다리던 영주권이 드디어 발급되었다. 오늘 드디어 새로 고침을 한 화면에서 상태가 Green으로 바뀌면서, “New Card is Being Produced”라는 새로운 상태로 변경되었다. 이제 주재원 비자는 사라지고 고용 상태와 상관없이 미국에 합법적으로 거주하며, 아무 회사나 취업할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이다.
가뜩이나 요즘 또 AI가 Ads의 세일즈 인원을 대체한다는 등 레이오프를 연상시키는 뉴스가 떠서 불안했는데, 이제는 언제 잘려서 귀국할지 모르는 파리목숨 신세를 벗어난 것이다.
이 영주권을 얻는 절차도 참 다사다난했다.
22년 10월에 팀을 옮긴 덕분에 나는 23년 1월의 대량해고에서 살아남았다. 원래 팀의 인원은 테뉴어를 기준으로 절반을 해고했고, 나는 테뉴어 기준으로 해고대상자였다.
23년 3-4월에는 DOL이 PERM을 대량으로 거부했는데, 나는 21년에 멍청한 변호사를 만난 탓에 1-2개월 딜레이가 있어 그 기간을 절묘하게 빗겨나갔다.
7월에는 EB-3의 Final Action Date가 2년이나 밀려버리는 일이 발생했는데, 휴지보다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석사 수료 덕분에 나는 EB-2로 지원하여 이 또한 피해갔다.
물론 EB-2도 언제 밀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Final Action Date가 Current가 되는 9월까지 전전긍긍했고, 9월이 되고 나서도 매달 Bulletin Board를 보면서 걱정했다.
Medical Exam은 10월에 제출했고, 제출하면서도 어디선가 의사 실수로 기록이 누락되어 몇 개월이나 더 기다렸다는 말들을 들으면서 혹시 나도 그러면 어쩌나 걱정을 했다.
12월 한국 방문 직전에 등기가 날아왔는데, 이 땐 영주권이 나온 줄 알고 정말 기뻐했는데 영주권이 아니라 EAD와 AP였다. 카드가 초록색이 아니라 빨간색이다.
아무튼 올해의 가장 중요한 OKR이었던 영주권 발급까지 살아남기가 무사히 완료되었다. 딱히 내가 적극적으로 할 수 있었던 건 없었지만, 정말 다행히도 올해의 끝의 마지막 영업일인 목요일에 목표가 달성되었다.
취업 스폰서 영주권 취득 이후에 언제부터 이직이 가능하냐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이 없어보인다. 온라인의 여러 정보를 취합해본 바로는 즉시 이직하더라도 고용주가 소송을 넣는게 아닌 이상 영주권 유지에는 문제가 없어보인다. 대부분 문제는 시민권 신청 단계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최소 6개월 이상 또는 안전하게는 1년 이상 현 직장에 근무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현재 팀에서 2024년에 내가 진행할 프로젝트는 그렇게 유망하지 않다. 굳이 커리어에 도움되는 프로젝트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팀을 옮기는 것도 애매하다. 2021년 10월에 미국으로 넘어와 딱 1년을 채우고 팀을 바꿨기 때문에, 여기서 1년이 갓 지난 시점에서 팀을 옮기는 것도 이력상으로 좋아보이지 않는다. 같은 PA내의 다른 팀이라면 차라리 좀 나을 수는 있을 것 같다. PA를 옮기는 건 불가능한 선택이다.
승진을 고려하기에는 작년의 프로젝트는 TF 성격의 것이라, 프로모션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 최소 2년을 팀에 투자해야 승진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승진을 위해서 2년을 희생하기도 싫고 다른 회사도 경험해보고 싶다.
참여 중이던 사이드 프로젝트 하나를 그만두게되어 시간이 좀 남게 됐는데, 그 시간을 인터뷰 준비와 스터디에 써볼 계획이다.
건강검진을 하기 가장 좋은 시기는 연초라고 하지만 그 사실을 몰랐던 나는 가장 북적이는 연말에 예약했다. 물론 연말은 여유롭고 휴일이 많은 반면 연초는 바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연말이 가능하기도 했다. 시차 때문인지는 몰라도 입국 직후에 건강검진을 받을 수는 없다고 해서, 시차가 비슷한 일본을 한 5일 여행하고 서울에 들러 건강검진을 받고 출국하기로 했다.
친구와 함께 오사카를 여행했는데, 나쁘진 않았지만 좋지도 않은 여행이었다. 타베로그에서 예약한 식당들은 대부분 괜찮았는데, 엄청나다는 느낌은 또 아니었다. 일본의 특징인지는 몰라도 모든 음식점들이 공간이 좀 협소해서 좀 갑갑한 느낌이 있었다. 음식은 좋긴했는데, 난 해산물을 즐기지 못하니 이것 또한 반쪽짜리였다.
오사카는 온천으로 그렇게 유명하지는 않은 것 같았지만, 그래도 괜찮은 노천온천을 하나 찾아서 친구랑 다녀왔다. 이 때는 날씨가 생각보다 춥지 않아서 오히려 별로였다. 한 겨울에 하는 야외 반신욕이 참 좋은데, 날씨가 따뜻하니 반신욕을 해도 좀 더운 느낌만 들었다. 흐르는 물 위에 누울 수 있는 곳은 참 좋았다. 낮인데도 은근히 사람들이 많았고, 한국인이 없어서 더 좋았다.
나는 해외여행을 갔을 때 한국말이 들리는 걸 별로 안좋아한다. 한국말이 여기저기서 들리는 순간 해외가 아니라 내가 명동 한복판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든다. 그래서 도톤보리는 별로 좋지 않았다. 엄청나게 붐비기도 했지만, 여기저기서 한국말밖엔 안들렸던 것 같다. 그럼에도 친구랑 엄청나게 여기저기 걸어서 돌아다녔는데, 어딜 갔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27000보를 걸었다.
한국으로 가는 날은 올해들어 가장 운수가 없었던 날이다. 내년을 위한 모든 액땜을 다 했다.
(일요일 오후 3시) 친구를 통해 간사이 공항 출국장이 미친듯이 붐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소요 시간 1시간을 예상했던 나는 급히 일정을 당겨야했다. 입국 날에 이용했던 택시 가격이 2배가 됐다. 이동 시간도 1시간 30분이나 걸리지만 출근 시간이니 그러려니 했다. 감기 몸살이 시작됐다.
(월요일 아침 8시) 몸살이 심해 제대로 자지 못했다. 택시가 이미 도착했다고 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다. 10분 정도 헤매다 문득 예약을 조회해보니 오사카가 아니라 교토의 같은 이름 호텔로 예약되어 있다. 그래서 소요시간이 1시간 30분이었던 것이다. 카카오 택시가 갑자기 먹통이 되어 현지 콜택시를 부를 수가 없다. 급히 호텔 앞 택시를 탔다. 예약해놓은 택시 요금도 그대로 내야했다.
(월요일 아침 10시 30분) 출국 심사를 마치고 라운지로 갔다. 다음날 오전 대장내시경이라 카스테라와 우유말고 먹을 수 있는게 없다. 라운지에 앉아있는데 직원이 돌아다니며 연착 정보를 알려준다. 어디로 가냐고 물어보기에 티켓을 보여줬는데 30분 지연됐다고 한다.
이러면 큰일이다. 4시까지 병원에가서 건강검진 키트를 수령해야 하는데 바뀐 일정대로면 불가능하다. 건강검진을 놓치면 비행기표며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급히 당근마켓에서 알바를 구해 병원으로 보냈다. 에어비앤비 숙소 안에 키트를 넣어달라고 했다.
(월요일 아침 11시 30분) 아직 탑승시간도 안됐는데, 라운지에 아무도 없는게 쎄하다. 카운터에 물어보니 연착된 것은 인천행이고 나는 김포행이었다. 급히 게이트로 가서 겨우 탑승했다.
(월요일 오후 2시 30분) 입국 심사를 마치고 숙소로 가는 중에 죽을 시켰다. 분명 한집 배달 소요시간이 30분이었는데, 한시간이 되어도 안왔다. 지연 알림이 3개나 와있다. 배민센터를 통해 가게에 연락 하려하니 채팅도 안되고 가게 연락도 안된다. 알바에게 연락이 온다. 에어비앤비 숙소 문이 안열린다고 한다. 집주인에게 연락해보니 그럴리가 없다고 한다. 몸살이 점점 더 심해진다.
(월요일 오후 3시 45분) 몸살이 훨씬 심해졌다. 알바를 만나 키트를 전달받고, 숙소로 가보니 정말 문이 안열린다. 죽은 막 도착했는데 이미 4시가 가까웠고 먹을 곳이 없다. 집주인은 40분이나 걸려야 도착한다고 한다. 주변의 본죽을 찾아서 이동했다. 본죽에서 가장 싼 흰죽을 홀에서 먹으려고 하니 대놓고 주인이 싫어한다.
(월요일 오후 4시 30분) 집주인이 자기가 해도 안열린다고 보조키를 또 다른 누군가가 가지고 온다고 한다. 40분이 걸린다고 한다. 이미 식사도 4시를 넘겼고, 곧 관장약을 먹을 시간이고 몸살도 갈수록 심해지는데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바로 근처 호텔을 예약하고 집주인에게는 환불 여부와 상관없이 그 숙소는 안쓰겠다고 통보했다. 배달한 죽은 먹을 수도 없으니 그대로 버려달라고 했다.
(월요일 오후 5시) 체크인을 하고 거의 바로 기절했다. 제대로 몸살에 걸렸다. 약을 먹을 시간보다 1시간 늦게 일어났다. 대장내시경 약은 정말 토나오는 맛이다. 저녁에 1L, 새벽에 1L를 마셔야한다. 나는 몸살이 나면 3-5분 간격으로 잠을 설친다. 그리고 같은 꿈만 꾼다. 이날 같은 꿈을 100번 정도 꿨다. 뭔가를 걱정하는 꿈이다.
이날 하루 쓸데없이 날린 돈만 합치면 100만원 정도 된다. 어떻게 하루 전체가 이럴 수 있는지 모를 일이다. 그래도 건강검진은 어찌어찌 받았다. 건강검진을 한 날 저녁에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던 분을 만나 저녁을 먹었고, 그날날 장염에 걸려 나는 비행기에서만 화장실을 30번 정도 갔다. 미국에 돌아와서도 일주일간 흰죽만 먹고서 겨우 회복했다. 올해 최악의 여행이다. 앞으로는 절대로 절대로 일정을 이렇게 타이트하게 잡지 않을 것이다.
태영건설 부도는 사실 무근이라던 보도는 2주만에 뒤집혔다. 자기자본대비 부채비율이 400%를 넘은 회사이니 지금 같은 분양 불경기에 가장 먼저 무너질 것이라는 사람들의 예상이 맞았다. 다른 건설사들도 살펴보니 부채 비율이 200%가 넘어가는 곳들이 있던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내년이라고 실적이 개선될 이유도 딱히 없어보이는데.
중국에서는 헝다 같은 회사들이 무너져내리고 있고, 경영진이 100조원의 부도를 내고 10조원의 현금을 미국으로 옮기려다 공안에 적발되어 지금 투옥되었다고 한다. 비슷한 규모의 회사가 하나 더 같은 수순이 될 것이라고 한다. 미국을 제외하곤 상태가 괜찮은 나라가 요즘 별로 없는 것 같다.
부동산 PF가 어그러지면서 은행이 타격을 받으면, 뱅크런이 발생하거나 다른 회사들이 자금 조달에 큰 문제를 겪는다. 큰 회사들이야 힘들어도 버티겠지만, 중소기업들 중에서 버티지 못하는 곳들이 많을 것이다. 정부에서는 사태 초기에 연착륙을 위해 노력하겠다는데, 단순히 세금으로 지원하기에는 국민들 반발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유명세를 통해 돈을 버는 것은 고리대금으로 돈을 빌리는 것보다도 더 인생을 힘들게 만들 수 있다. 연예인들의 삶이 그 대표적인 예다. 대중의 사랑을 받고 큰 돈을 벌 때는 좋지만, 상황이 나빠지거나 대중이 등을 돌렸을 때 비로소 그 청구서의 크기를 실감하게 된다.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대중에 의해 감시되는 경우에 이를 벗어날 방법은 도저히 없다. 일단 한 번 유명해진 사람은 살아있는 내내 그 유명세에 대한 값을 치룬다. 좋은 일들이 가십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보통은 사건이나 안좋은 일들에 휘말린 경우다. 아무도 몰랐으면 하는 시기에 전국민이 수군대는 것이다.
아무도 나를 모르고 부와 힘을 가진 삶이 최고의 삶이다. 그 다음이 아무도 나를 모르고, 적당하게 사는 삶이라고 본다. 한 번 유명세에 올라탄 사람은 다시는 그 바퀴에서 내려올 수 없다.
미국에도 한국에서 유명한 영화들을 상영한다. 주로 한인타운 근처에 있는 AMC에서 상영하곤 하는데, 최근 한국에서 핫한 ‘서울의 봄’을 여기서도 상영하기 시작했다.
내가 롤에 너무 미쳐있어서인지 모르지만, 이 영화는 내 입장에서 대환장의 한 판의 롤과 같았다.
팀 전두광은 5인 파티다. 시즌 1등이 되고 싶은 마스터 전두광은, 실패하면 아이언으로 강등되는 도박을 제안한다. 상대팀 리더인 챌린저만 게임에서 배제하면, 우리가 이긴다며 팀원들을 설득한다. 팀에는 과거 챌린저였던 선배들도 있지만 실제 실력은 없는 퇴물들이다. 팀에서는 노태건과 도희철 정도가 그나마 쓸만하다.
팀 이태신은 팀 전두광에 의해 급하게 만들어진 팀이다. 과거 챌린저들이 많지만 현재 실력은 그저 그런 퇴물들이다. 그래도 공수혁과 김준엽이 우호적이지만, 공수혁의 키보드는 상대편이 미리 QWER 키 중에 WER을 뽑아놓은 상태. 김준엽은 착하지만 전투력이 미니언 한 라인 정도밖에 안된다.
지는 쪽이 멸망하는 게임이 시작되었다. 전두광 팀의 초반 상황은 매우 나쁘다. 김준엽이 잠시 전두광에게 스턴을 걸어 게임을 끝낼 찬스가 왔지만, 갑자기 퇴물들이 티어빨을 외치며 겐세이를 놓아 전두광을 놓아준다.
간신히 탈출은 했지만 전두광 팀도 여전히 불안하다. 같은 편 선배들은 아무것도 안하고 ‘우린 다 씨발 강등될거야, 아이언될거야, 너 때문이야’라고 징징대기만 한다. 결국 무리한 넥서스 진격을 위해 노태건과 도희철에게 사이드로 각각 진격하라고 하지만, 말을 안들어서 수차례 개지랄을 해서 겨우 말을 듣게 만든다. 그래도 팀 이태신처럼 퇴물들이 적극적으로 겐세이는 놓지 않아서 오히려 낫다. 맵핵과 디스코드도 해킹해놨기 때문에 정보도 훨씬 앞서는 상황이다.
팀 이태신은 퇴물들이 티어빨을 내세우며, 적극적으로 진로를 방해한다. WER이 다 뽑혀서 Q만 남은 공수혁의 마지막 Q키마저 전두광에게 속은 퇴물들이 빼버린다. Q키가 존나 답답해한다. 물론 팀 전두광은 실제로 키를 빼지 않았기 때문에 스킬이 하나도 없는 공수혁은 바로 제압당한다.
결국 본진 억제기와 쌍둥이가 다 털리고, 김준엽까지 제압당한 답없는 상황. 퇴물들은 이미 게임을 나갔다. 이태신은 최후의 수단으로 본진을 버리고 전두광의 넥서스로 돌격한다. 어떻게 백도어가 승리하는가 싶지만, 팀 전두광에 붙어버린 PC방 주인이 나타나서 키보드 선을 가위로 잘라버린다. 개같이 패배.
승리한 팀 전두광은 모두 챌린저로 승급하고 기쁨의 댄스댄스 파티. 승급 기념 샷도 함께 찍는다. 패배한 팀 이태신은 아이언으로 강등되어 심해에 추락한다. 승리 후의 전두광이 화장실에서 얼마나 도파민이 쩔었을지는 상상도 할 수 없다. 그 정도 도파민이면 한 번 더 하고 싶지 않았을까.
실제 상황의 전개와 영화는 많은 차이가 있겠지만, 영화 내용만 보면 누가누가 잘하냐보다는 어느 팀에 트롤이 더 많은지가 훨씬 중요했던 싸움이 아닐까. 그래서 내가 이렇게 강렬하게 롤을 떠올렸던 것 같다.
서울의 봄과는 별개로 문득 드는 생각이 저런 서슬퍼런 시절에도 살아남아 결국 대통령까지 한 김영삼과 김대중이 한편으로 참 대단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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