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9시에 잠들었는데, 일어나니 오후 3시가 되어있다. 18시간을 잠들어있었다. 경찰대학 1학년일 때 주말에 만날 사람도 없고, 학교를 걷자니 선배를 마주칠까봐 생활실에서 잠만 20시간을 잤던 기록에 거의 근접한 긴 잠이다. 재충전을 위한 잠이 아닌 게으름 그 자체의 잠. 이쯤 누워있으면 어떤 자세로 있어도 불편하고, 화장실도 가고 싶건만 그냥 따뜻한 이불에 계속 있고 싶어 누워있는 정도다.
이 게으름도 더 이상은 견딜 수 없어 이불을 걷고 나와 새해 인사를 돌리기 시작한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직후에는 서울로 돌아가기 전에 고향에서 만날 사람들에게 인사를 드렸고, 이번엔 서울에 올라가서 볼 사람들에게 연락을 드린다. 청첩장을 돌릴 때 미리 정리를 해두지 않은 탓에 청첩장을 받지 못하고 결혼식에 온 사람들이 대부분인 참사가 일어났는데, 때문에 이번에는 아예 이름을 모두 다 적어놓고 연락을 드렸는지 기록하며 연락을 돌렸다.
나는 누구에게 먼저 연락하는 일이 매우 드물다. 가깝게 살아서 자주 보는 사람은 자주 연락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사실 연락할 일이 없다. 연락의 빈도에 나는 크게 중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나는 ‘친하다’의 기준을 한 동안 못보다가 정말 오랜후에 보더라도 위화감없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친한 사람에게도 먼저 연락을 하질 않는다.
이런 방식이 오해를 경우를 불러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누군가는 섭섭해 하거나 친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수많은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친분을 유지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SNS는 그런 부담을 좀 덜어주는 역할을 했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 행복 경쟁의 장이 되더니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피곤을 느꼈는지 떠나가고 있다. 정치인처럼 주변의 사람관리를 빡세게 한다고 하면 자동화된 시스템이나 비서가 필요할 것 같다. 나에겐 그 정도의 많은 사람들이 있진 않다.
올해엔 ‘선택과 집중’을 통해서 가족이나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한 해를 보내기로 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는 있지만, 그 모든 사람들에게 노력을 쏟는 일은 정말 허망한 일이다. 어쩌면 누구와도 친하지 않은 그런 사람으로 남게 되지 않을까. 그냥 소중한 사람들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는 한 해를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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