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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1. 2019. ‘서른’

2019년 나는 PC방에서 서른을 맞이했다. 오늘 같은 날은 술을 마시는 것보단 PC 방을 가는게 더 괜찮은 선택이다. 2018년 오후 10시, 아직 성인에 2시간 미치지 못한 이들이 들어올 수 없는 조용한 PC방. 그들은 아마 2시간을 더 기다려 PC방에 오기보다 술집으로 향할 가능성이 높다. 그 날이 첫 음주가 아닌 친구들도 있었겠지만 더 이상 눈치보지 않고 주점에 앉아 당당히 술을 주문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빠르게 체감할 수 있는 성인의 특권이다.

물론 서른이 되어버린 나에겐 그런 감흥과 추억은 기억도 나지 않을 무렵이다. 모두들 새해 카운트를 하러 밖으로 나가버렸는지, 한산한 PC방에서 우리는 열심히 롤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 모두가 서른 살이 되었다.

친구 중 한 명의 생일은 1월 1일이다. 몰래 케이크를 사놓고 깔끔하게 승리를 따낸 후에 축하해주려고 하던것이 연패를 거듭해서 벌써 새벽 2시가 되었다. 새벽 2시가 되어 겨우 새해 첫 승리를 거두고, 생일 케이크를 받은 친구는 매우 감동해서 골든벨을 울린다고 해 우리는 새벽 3시에 밖으로 나왔다.

새벽 3시의 김해는 놀랍게도 매우 북적인다. 아직까지 술을 마시는 체력으로 보아하니 오늘 성인을 맞이한 이들이 분명하다. 새벽 3시에 김해의 감자탕집이 이렇게 북적거리고 시끌벅적 하다니. 이 분위기로 매일 장사가 된다면 김해가 대도시 부럽지 않게 느껴질텐데. 길거리 롯데리아도 사람들로 북적이고 택시는 이미 줄이 길고, 노래방도 겨우겨우 자리를 구해 들어갔다.

새벽 다섯 시. 친구 한 명은 졸음을 도저히 버틸 수 없어 귀가하고 나머지 넷은 다시 PC방에 자리했다. 친구 한 명은 일출을 보고 싶어하는데 일출 시간은 7시 30분. 등산을 하기 너무 귀찮다. 사실 새해의 첫 해를 보는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해는 매일 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십억년 전부터 있던 것이다. 모든 것은 어떻게 의미를 부여하기에 따라 다를 나름이다. 새로운 건 매 한 판의 게임 뿐이다.

아침 9시가 되어 우린 밖으로 나왔다. 오늘은 양가 부모님께 새해 인사를 드리는 날이다. 처가를 오전에 뵙고 우리 집은 저녁이라 잠 잘 시간이 있었다. 인사를 드리고 나와 오후까지 잠을 자고, 요양병원에 계신 아내의 할머니를 뵈러 갔다. 올해 좀 바뀐 우리의 생각은 아이를 갖자는 것이다. 언젠가는 나도 노쇠해져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침대에 누워있는 것 뿐인 날을 맞이할 날은 온다. 그 때 찾아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얼마나 외롭고 슬플까. YOLO가 좋다고 하지만 영원히 빛나는 젊음이 계속될 수는 없다. 나이가 들수록 인정하기 싫어도 실감할 수밖에 없다. 그 전에 스스로 죽음을 택하면 되지 않을까 싶지만 막상 그 때가 닥치면 내가 그럴 수 있을지도 의문이든다.

내가 결혼을 하고 서른이 되고 육아를 생각하게 될 날이 오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어느덧 이렇게 서른이 되었다. 이걸 한 번 더하면 환갑이 된다. 으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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