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론 》 「존 스튜어트 밀」

독서 모임에 나가려고 읽다가, 너무 쫓기듯이 읽는 것 같아 모임을 포기하고 조금씩 읽었다.’자유론’은 150년 전에 쓰여졌지만, 온라인 서점에서 베스트 셀러 목록에 있는 책이다. 책이 시사하는 바는 현 시대와 상통하는 부분이 정말 많다.

모호성

윤리, 사회와 관한 문제는 수학, 과학처럼 딱 떨어지는 명확한 정답이 없다. 가령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개인의 행위의 자유는 보장받아야 한다.’는 명제를 보면, ‘남에게 끼치는 해’가 무엇인지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다. 이 기준은 ‘위해의 종류’와 ‘위해의 정도’라는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낸다. 만약 ‘어떤 위해도 끼치지 않는’이라는 기준을 도입한다면, 이 모호성을 해결할 수 있지만 그 결과는 사실 모든 행위를 금지하도록 만들 뿐이다.

 

현실적 최선인 민주주의

누구도 절대적인 기준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민주주의’에서 이 답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것이 옳다기보다는 현실적인 최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 독재보다 더 강력한 폭력이 될 수 있다. ‘다수의 횡포’라 불리는 이 상황에선 독재자를 끌어내릴 시민 그 자체가 적이 된다.

 

표현의 자유

이런 사회에서 소수가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은 ‘표현과 사상의 자유’이다. 이것을 보장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가진 진리가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는 그 자체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만약 소수가 옳은 사회에서 소수가 자신의 사상을 대중에게 전파하여 여론을 바꿀 수 있다면, 대중의 횡포를 잠재울 수 있다. 물론 우리는 이것에 어떤 예외도 둘 수 없다. 소아성애자나 극단적 종교와 같은 예외를 만드는 순간, 그것은 단지 살생부로 전락하게 될 뿐이다.

그래서 ‘자유론’의 저자는 대중은 그들을 사상의 이유로 비난할 수 있지만 해를 끼치면 안되고, 소수는 그 비난을 감수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새로운 시대나 패러다임은 대중이 아닌 소수의 엘리트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하는데, 이들은 필연적으로 소수이기 때문에 이런 당위를 주장하는 것 같다. 만약, 엄청난 천재가 자신에게 끼칠 해악이 두려워 자신의 사상을 피력하지 못한다면 큰 사회의 손실이 아닐 수 없다.

 

토론의 필요성

‘표현과 사상의 자유’가 보장된 환경에선 ‘건전한 토론문화’가 자라난다. ‘자유론’에서 다루는 토론의 목적은 참여자가 자신의 의견을 보완하고, 타인의 것을 잘 이해하기 위함이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진리를 공격받으면 그 약점을 보완할 수 있고, 타인의 관점에서도 바라볼 수 있다. 이건 최적값을 향해 나아가는 딥러닝의 학습 과정과 유사해보이는데, 이 방법으로 우리는 절대적 진리는 모르지만 진리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된다. 이 방법을 잘 활용한다면 시대가 바뀌고, 시대가 요구하는 진리가 바뀌더라도 우리는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불쾌한 현실

참으로 낙관적인 문장이지만, 저자의 말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면 이 책을 이 시대에 다시 읽을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발전한 기술은 ‘선동’을 더욱 정교하게 만들어 민주주의적 ‘독재’는여론을 조종해 이루어진다. 저자는 너무 대중의 능력을 과대평가 했고, ‘표현의 자유’는 보장받지 못한다.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은 온오프라인에서 닥치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건전한 사회란 어떤 의견 A, B, C의 지지층이 실시간으로 변하는 것이다. 지금의 사회가 바라는 것은 A만 존재하는 상태가 그대로 지속되는 것이다. ‘토론’ 은 전투의 기술이 되었고, 실제 토론회는 비난과 성토의 장 이하도 아니다. 어디에서도 토론하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이런 사회에서 생존을 위한 미덕은 ‘선동과 토론의 기술’을 배우고, 대중과 다른 의견은 가능한 절대 피력하지 않는 것 뿐이다.

「2018년 10월 6일 화요일」 《 구글 코리아 에서의 3달 》

어느 덧 구글 코리아에서 일을 시작한지 3달이 지났다.

처음에는 정말 많은 것들이 어려웠다. 특히나 사전 지식이 없고, 영어에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나에게는 그 어려움이 더 크게 느껴졌다. 나는 운동, 영어, 일을 중심으로 3개월을 보냈다. 평일에는 출근해서 일을 하고, 운동을 하고 퇴근하면 영어회화 숙제를 하고, 영어 회화를 들으면서 보냈던 것 같다.

세 가지 중에서 어떤 것도 쉽지는 않다. PT를 처음 시작할 때는 지금보다도 체력이 좋지 않아서, 이렇게 간단한 것도 못할 만큼 몸이 망가졌구나 생각했다. 그나마 조금 따라갈 만하면, 운동 강도가 높아지니 매일매일 힘들었다. 영어회화도 매일 해야 할 숙제가 있으니 1시간 반 짜리 수업을 포함해서 하루에 3시간 정도는 꾸준히 시간을 써야했다. 아마도 영어를 잘했다면, 회사 생활이 좀 더 편해졌을 수도 있다. 내 글쓰기 방식도 돌아볼 기회가 있었는데, 나는 한글이나 영어나 글을 길게 쓰는 경향이 있어 이해하기 힘들다. 의식의 흐름처럼 쓰는 글쓰기 방식을 좀 더 구조적으로 바꾸고 어휘도 바꿔야한다.

가장 어려웠던 건 역시 일이다. 구글 코리아에 오기 전의 관련 경력이 없다보니, 업무 방식 자체가 새로웠고 문제는 꼬리에 꼬리를 무슨 방식이라 쉽게 보이는 일도 나에겐 어려웠다. 조금 진행이 된 날에는 행복했고, 다시 막히거나 되돌아갈 때는 슬픈 날이 감정의 기복과 함께 연속되었다. 회사의 시스템에 익숙해지는 것도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남들보다 적응하는 속도나 일하는 속도가 느리다고 생각하고 있다. 목표는 남은 3개월 동안 잘 적응하는 것이다.

그 이외에 머릿속에 들어있는 건, 예비군이나 결혼식과 같은 것이다. 곧 예비군을 받는데, 예비군복을 버려서 동기들에게 물어보니 대부분 버린 상태라 구하기 쉽지 않았다. 결혼식은 배우자가 준비중인데, 신경을 써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고 고맙다. 내가 여기에서 할 수 있는 건 이후 3개월까지 좋은 성과를 만드는 것이다.

물론 구글 코리아의 분위기는 다소 전투적인 나의 상황과는 완전히 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일과 생활의 밸런스를 정말 잘 유지하고 있다. 일을 하면서 느끼지만, 이 사람들은 모두 유능하고 똑똑하다. 이것이 노력으로 극복되어 나도 좀 더 여유를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2018년 9월 25일 화요일」 《 추석 》

이번 추석엔 고향으로 내려왔다. 찾아뵙고 인사할 사람들이 많고, 해야할 일들이 많았다. 그만큼 일을 하지 못해서 느끼는 불안감은 어쩔 수 없다. 운동도 한 이틀을 하지 않으니 다시 적응하기 위해선 연휴가 끝나지 전부터 꾸준히 해야 할 것 같다.

요즘은 명절 풍경은 예전에 비해 달라진 모습을 보인다. 토요일이 공휴일이 되고 대체 공휴일이 생기면서 명절 연휴가 훨씬 늘어나면서 시간은 훨씬 늘어났다. 해외 여행의 장벽도 훨씬 줄어들면서 상대적으로 명절을 간소하게 보내고, 대신 해외여행을 통해 휴가를 즐기는 모습이 일상적인 모습이 되었다. 나는 그다지 여행을 즐겨하진 않아서, 그냥 그 나름의 여유를 즐기는 중이다.

과거에 비해서 사람들은 명분보다는 실용적이고 편한 것을 중요시한다. 무거운 차례상 보다는 오히려 가볍고 간소한 것이 이름있는 가문의 예와 같다는 글이 온라인을 맴돌고, 프라이드 치킨이나 피자같은 음식들이 차례상에 올라가는 걸 신기할 따름이다. 직접 차례 음식을 만들기보다 만들어진 음식을 사오는 모습도 명절 노동과 같은 고부간 문제들을 해결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어쨌거나 명절이 스트레스를 받는 시즌이 아닌 힐링의 시즌이 된 건 정말 환영할 일이다.

나는 회사에서의 3개월을 곧 앞두고 나름의 성과를 내길 원하고 있다. 사실 교육을 제외하면 한 달 반에 해당하지만 나에겐 큰 시간이 흐른 것처럼 느껴진다. 이제는 뭔가 모르는 것은 직접 찾아서 해결할 줄 알아야하고, 누군가 뭔가를 물어볼 때 대답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내가 하고 있는 일에서는 말이다. 그런 점에선 최근에 소홀했던 정리 작업을 반성할 필요가 있다. 머릿속에선 막연히 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까먹어버린 것들이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꾸준히 깨어나는 돈에 대한 걱정이 있다. 구체적인 재정 계획이 보이지 않으니 나는 막연히 이 돈에 대한 불안감에 여전히 시달리고 있다. 이 연휴가 끝나기 전까진 이 문제를 깔끔히 해결할 필요가 있다. 컴퓨터와 마찬가지로 내 머릿속에도 여러 프로세스를 돌리기 위한 리소스들이 있는데, 걱정이나 스트레스가 이 상당수를 차지해버리면 다른 프로세스들이 돌아가지 못한다. 머릿속에 공상이나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 건 내 머릿속이 현재의 일과 걱정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나는 좀 더 마음의 여유를 찾을 필요가 있다.

「2018년 9월 9일 일요일」 《 정치와 정의 》

정치인의 목적이 다수의 유권자를 확보하여, 가능하면 오랫동안 권한을 유지하고, 자신의 당을 점점 키워나가는 것이라면 결국 근원적으로는 표에 집중할 것이다. 표를 얻지 못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정치인은 없을 것이다. 내 생각은 이런 가정에 의존한다.

어떤 집단이 시위를 하는 목적은 자신들이 원하는 바가 정책적으로 반영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시위에 나가는 건 생각보다 피곤하다. 쉬고 싶은 날에 쉬지도 못하고, 바깥에 나가 어쩌면 추위에 떨고 혹은 더위에 땀을 흘리며 오랜시간 구호를 외치고 행진을 하는 건 투표에 비해 정말 어렵다. 그래서 그들은 확실히 투표할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이것도 가정이다. 내가 정치인이라면 나는 누가 투표장에 갈지 안갈지 모르지만 시위에 나온 사람들 만큼은 투표장에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이 나의 의견을 물었을 때, 답을 회피하거나 부정적인 답을 했을 때 그 표들이 내 반대쪽으로 몰려갈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다.

따라서 정치인은 계산적인 판단을 해야한다. 이들을 지지할 경우 기존 지지층이 이탈하여 결과적으로 손해라면 안되지만 이득이라면 그만한 가치가 있다. 정치인이 다루는 현안은 한 두가지가 아니며 그들도 자신들이 모든 정책을 원하는대로만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두 집단이 있다. 한 집단은 매우 합리적이다. 이 집단은 너무 합리적이기 때문에 토론을 좋아한다. 하나의 정책에 대해서 그들은 결국 결론에 닿지 못한다. 모두의 의견이 분분해 그들은 서로 싸우는데 모든 에너지를 소비한다. 물리학의 닫힌 계와 같이 그들 내부의 에너지는 바깥으로 나가는 경우가 거의 없다. 정치인은 생각한다.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크게 가질 필요는 없다. 다양한 의견들 중에 무엇을 지지해도 결국 반대와 합치면 제로섬이 되기 때문이다. 즉, 정치적인 가치는 0이다.

반면 다른 집단은 합리적이지 않다. 이들은 토론하지 않는 대신 신경을 꺼버리는 쪽을 택한다. 따라서 목소리는 그 집단 전체를 대변하지 않지만 그래도 밖으로 나갈만한 크기의 목소리를 만들어낸다. 그 목소리가 집단 전체를 대변하진 않는 것을 정치인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무조건 이득이된다. 그리고 이것에 동의하는 다른 불이익도 없기 때문에 그들을 위한 정책에 신경을 쓴다. 결과적으로 비합리적인 집단의 이익만 반영되고, 합리적인 집단의 이익은 고려되지 않는 비합리적 결과가 발생하는 아이러니가 벌어진다.

첫 번째 집단은 합리적이지만 포용력이 매우 부족하고 목적의식이 결여되어 있다. 어떤 정책을 반영하는데 있어서 그것이 정의로운지와 평등한지에 대한 것들을 결벽증에 걸린 것처럼 외치는 이들이 있기 때문에 합의에 도달할 수가 없다. 그래도 뭔가 하나의 의견을 모아야한다는 목적의식도 없기 때문에 결국 결론에 닿지 못하고 서로의 권리를 서로 지워버리고 만다.

이렇게 살펴보면 정책이 이루어지는 과정은 정의와는 전혀 동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사실 우리는 무엇이 정의인지 알 수가 없다. 정의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 껏 많았지만, 우리는 그것에 대한 토론을 좋아할 뿐이지 사실 그런 세상에서 살아본 적도 없을 뿐더러 그런 세상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따라서 정의를 외치는 사람들은 자신의 정의를 외칠 뿐이다. 언젠가는 정의로운 세상이 올 것이라 믿는 것도 본인이 느끼기에 좋은 세상일 뿐이다.

결국 누군가는 이득을 보고 피해를 본다. 만약 자신이 언젠가 피해를 봐도 상관이 없다면 정치에 대해 무관심하고 방조할 수 있지만, 그게 아니라면 뭔가를 해야만 한다. 자신의 이익을 항목별로 쪼개서 그것들을 주장하는 시민단체를 만든다든지. 지금의 정치인의 셈법은 너무나 간단하고, 토론을 하기에는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

「2018년 9월 6일 목요일」 《 수면 문제 》

회사 생활을 시작하고 가장 고쳐지지 않는 것은 내 수면 문제다. 잠을 어떤 때는 1시에 자고, 어느 날은 2시나 3시에 자다보니 제대로 수면을 취하지 못하고 자연히 출근도 늦어지게 되어 악순환이 시작된다. 대게 주말에는 다음 날 출근도 없고하니 그냥 늦게 잠들어버리는데, 그게 일요일까지 고쳐지지 않으니 그 습관이 자연히 평일로 이어지고 있다. 이제는 자기 30분 전부터는 핸드폰도 그만두고, 다른 수면을 방해할 수 있는 것들과 거리를 둘 필요를 느낀다.

「2018년 9월 2일 일요일」 《 이 시대에 어울리는 지능 》

‘너는 참 머리가 좋은 것 같아’라는 말은 그 자체로 모호한 말이다. 우리가 이 말을 쓰는 경우들을 살펴보면 그렇다.

우리 사회에서 머리가 좋다는 건 ‘좋은 대학을 나왔다’, ‘최종학력이 무엇이다’, ‘어떤 시험에 합격했다’, ‘직업이 무엇이다’ 와 같은 질문들의 대답과 같다. 아마도 이런 도식은 상당한 기간 우리나라에서는 옳았고, 그 시대가 필요로하는 인재의 수준과 일치했을지도 모른다. 정해진 분야에서 적당한 전문성을 가지고 평균 이상의 성능을 안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사람. 위의 질문들이 보증하는 두뇌의 성능은 다음과 같은 조건들 중에서 적어도 몇 가지를 만족시킬 것이다.

‘뭔가 배우고 암기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뭔가 이해해서 적용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한 가지에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다’, ‘여러가지 분야에 대한 지식이 남들보다 평균 이상이다’, ‘규칙적이고 착실하다’

하지만 이것이 두뇌의 성능을 나타내는 모든 지표는 아니다. 적어도 지금과 같은 시대에서는 이전만큼 중요하지 않은 지표일 수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 ‘필요한 정보만 빠르게 습득해서, 높은 수준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능력’, ‘실시간으로 임기응변에 훌륭하게 대처하는 방법’

이런 능력들은 어떨까. 많은 정보가 빠르게 생겨나고 쓸모없어지는 시대에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많은 정보를 머리에 쌓아두는 것이 아닌 건 분명하다. 이런 능력을 어떻게 기르고 평가할 것인지는 더 막막하다. 하지만 우리가 재래식 교육에서 이것들을 배울 수 없다는 건 분명하다. 책을 통해 배우지 못할 것도 분명하다. 수십년이 흘러서 정리된 뭔가가 나올 것이고 이미 그 시기에는 쓸모없을 내용들이다. 트렌드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사람이나 새로운 틀에서 처음으로 성공을 거둔 사람들에게서 듣는 것 말고 또 뭐가 있을까?

「2018년 8월 31일 금요일」 《 서울 》

술을 많이 먹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도 다닐 때는 주말에 심심하지 않았는데, 건강 때문에 술을 끊으니 만날 사람도 적어지고 출근하지 않는 주말은 정말 할게 없다. 처음에는 좋았는데 방에 그냥 가만히 있으면 정말 잉여가 된다. 주말에 회사에 나가도 아무도 없고 무엇보다 에어컨을 혼자 있는데 켜기가 좀 그렇다. 집에서 일을 하기에는 책상이 없다. 지금 있는 집은 왜인지 모르지만 침대가 더블 침대에 소파가 있어 빨래 건조대를 하나만 놓아도 이동이 힘들다. 책상을 놓고 싶어도 놓을 자리가 없다. 집에만 있으면 신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건강해지지 못하는 것 같다. 뭘 하든 사람들을 만나고, 밖으로 돌아다니는게 좋은 것 같다. 혹은 공부나 일을 하더라도 나가서 바깥 카페에 가서 하는게 좋지 않을까.

「2018년 8월 23일 목요일」 《 휴식 》

나는 일정을 타이트하게 잡고 그것을 잘 지키지 못하는데, 그 결과는 대게 일정을 뒤로 쭉 밀어버리고 남은 시간을 침대에 누워 휴식하며 보내는 것으로 끝난다. 이렇게되면 일정이 널널한 것보다도 더 최악의 결과를 낼 공산이 크다.

이럴 때의 휴식이 만족스럽냐 하면 딱히 그런 것도 아니다. 하지 않은 일들에 대한 부담감은 그대로 마음에 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빨리 일어나서 일을 하는게 훨씬 마음이 편하다. 열심히 한 나에 대한 보상이 아닌 일시적 도망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하루를 끝내고 나서 침대에 누웠을 때의 기분은 그날을 평가하는 척도가 된다. 눕자마자 달콤하게 잠이 몰려온다면 그 날은 할만큼 한 것이고, 잠이 오질 않아 핸드폰을 뒤적인다면 그 날 하루는 그다지 열심이지 않은 것이다. 피곤하지 않다면 잠이 딱히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마음이 불안하면 오히려 좋은 꿈을 못 꾸고 잠을 설치게 된다. 그 날 하루가 끝났을 때 머리에 아무런 생각이 없이 오로지 몸만 피곤한 것이 제일 좋아보인다. 논산에 있을 때가 딱 그랬던 것 같다.

피곤한 하루를 쌓아가는 습관을 무조건 가져야겠다.

《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 》-「성석제」

교육 받으러 갈 때 샀던 책인데, 너무 소중했던 나머지 면세품 마냥 뜯지도 않고 있다 이제야 읽기 시작했다. 이 작가는 나름 친숙해 신간인 줄 알았는데 데뷔작이라고 한다. 기승전결이 있는 소설보다 이런 류의 책은 전 내용을 기억할 필요가 없어서 짬짬이 읽기에 좋다.

수필 같기도 하고 소설 같기도 하고 내용들이 사실인지 알 길이 없는데, 어차피 하루 자고 지나면 기억이 나지 않아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 그래도 좋은 점은 주제가 다양하니 책을 읽는 동안에는 내가 일상에서 마주치지 못하는 낯선 주제들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 정도다.

「2018년 8월 18일 토요일」 《 걱정 》

한국에서의 출근 2주차가 되었다. 이제 교육은 끝나고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려니 막막하고 내가 정말 아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퇴근 후에 시작한 영어회화도 정말 어려웠다.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문제라 말씀들 하시지만, 그 시간이 쉽게 흘러갈 것 같지는 않다. 일 자체는 재미있고 나에게 잘 맞는 일이라 다행이지만 그 규모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크다. 이번 주에 받았던 가장 큰 충격은 어렵다고 생각했던 문제가 질문을 하고보니 생각보다 더 어려웠다는 점이다. 인사 추천을 해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직 내 몫도 못하면서 누굴 추천해도 되나 싶었지만 또 괜히 스스로 움츠러드는게 아닌가 싶어서 인터뷰를 통과할 수 있을만한 잘 아는 사람들을 생각해냈다. 내가 아는 사람들이야 죄다 비전공자들 뿐이지만 그 중에는 정말 아까운 인재들이 몇 명 있다.

그 중 한 명을 오늘 만나 이야기를 했는데, 회사에 대해 설명하다보니 내가 어떻게 회사를 생각하고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그 생각은 그에게 결심을 굳히기에 충분해서, 조금의 준비를 한 후에 지원을 해보기로 결정한 모양이다. 물론 내 전 직장에서 전직을 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속해 있을 때는 끊임없이 현자타임을 느끼지만 막상 나가려고 하면 나가서 뭘 할지 불안하고 걱정된다. 전 직장을 퇴사한 동기 선배들이 대개들 잘 나가는 이유도 확실한 뭔가가 있었거나, 그만큼 큰 결심을 하고 나갔기 때문이다.

나는 오로지 운동과 영어와 회사 일만 생각하기로 했다. 일에 있어서 너무 큰 욕심을 가지면 안 좋겠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힘 들어가지 않고 운동하는 것처럼 일을 할 때 스트레스 받거나 긴장하면서 하지 않는 것이니 이런 마음가짐으로 열심히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