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오 영감 – 오노레 드 발자크

고리오 영감
1830년 파리

‘고리오 영감’은 1830년대에 출간되었는데,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한 하숙집에 기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고리오 영감’과 ‘외젠’이라는 청년을 중심으로 풀어나가는 소설이다. 이 소설의 느낌은 다소 음울해서 흡사 1980년의 이문열 소설을 읽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그도 그럴것이 이 소설의 주인공인 ‘외젠’은 지방에서 파리로 상경한 20살 대학생으로, 그에게도 ‘기쁜 우리 젊은 날’의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고학생이 겪는 가난과 절망이 결코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성공을 열망하지만 이내 좌절한다. 당시 파리는 매우 발전하여 대학 제도, 법률 시스템이 모두 갖춰진 문명 사회이긴 했지만, 출세라는 건 여전히 어려운 일이었다. 가난하고 빽없는 이들의 유일한 희망은 오로지 공부 뿐이었다. 하지만 그 공부의 성공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법관으로서 누릴 수 있는 금전적 보상은 그에게 딸린 식솔들. 가난한 고학생만 바라보고 있는 그들의 가족까지 구제하기에 그 성공은 너무 작은 것이다.

과거에도 지금처럼 자력으로 성공하긴 참 어려웠나보다. 그래서 이 젊은이는 다른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바로 파리의 사교계에 입성하여 돈 많은 부인을 꼬셔 인맥을 얻고 돈을 지원받아 성공으로 나아가겠다고.

그들만의 리그

당시의 사교계는 그저 거품 덩어리에 불과한 것으로 그려진다. SNS 상으로 만든 인맥이 가볍다고 하지만, 오프라인 사교계에서 맺은 인맥이 그렇게 다를게 있을까. 유명 인사와의 친분을 과시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일이다. 좋은 옷과 신발을 신고, 비싼 시계를 차는 일들. 좋은 차를 타고 모임에 참석해 남들에게 주목받으려는 관심병은 200년 전부터 내려온 인류의 전통과 같은 습성이다.

이 당시는 SNS 가 없으니 하인을 통해 서신을 전달하고, 부지런히 마차를 타고 저택에 방문하는 식으로 관계를 유지했다. 어지간한 돈으로는 해낼 수 없는 일이다. 이 가난한 젊은이는 이 사교계에 입성하기 위해 결국 큰 결단을 내린다. 바로 가족에게 돈을 요구하는 것. 1년 생활비와 맞먹는 1천 2백 프랑을 그는 자신의 사교계 입성을 위한 군자금으로 요청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초기 투자 비용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이 젊은이의 의지가 진실된 것이라면. 하지만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가족이 지는 고통의 무게도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다. 사실 이 젊은이의 시도가 성공할 확률은 누구나 알듯이 희박하다. 이 소설에서는 그 가족들이 너무 고통받는 것이 싫었는지 도박을 통해 돈을 불려서 즉시 돈을 갚아버린다. 하지만 현실은 좀 더 가혹한 법이다.

유산은 죽을 때까지 물려주지마라

이 소설이 한 편으로는 주인공 젊은이의 성장 소설이지만, 제목이 ‘고리오 영감’으로 지어진 이유는 바로 이 교훈이 아주아주 절실하기 때문이다. ‘딸바보’ 라는 용어는 21세기에 나왔지만, 딸바보의 진정한 표본은 1834년에 그려졌다고 보면 되겠다. 당시의 1프랑의 가치를 찾아보니 대략 20000원 정도라고 한다.

제면업자였던 고리오 영감의 재산은 100만 프랑이 넘었다. 현재 가치로 200억이 넘는 재산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이다. 아마 이 돈을 죽을 때까지 가지고 있었다면 그는 행복하게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허영심 많은 두 딸들. 그 딸들의 결혼 지참금으로 그는 각 100억을 줘버린 후 겨우 1만 프랑의 연금에 의지하여 후지고 후진 하숙집에서 생활한다.

그의 딸들은 좋은 집안, 재력가와 결혼했지만 행복한 생활을 하지 못한다. 그들은 허영을 부리고 싶어하지만 남편에게 재산권을 몰수 당했으며, 결국에는 절도까지 저지르게 된다. 앞서 말한 그 사교계의 허영을 맞추기 위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결국 그녀들은 영감의 마지막 1만 프랑의 연금까지 요구하여, ‘고리오 영감’은 자신이 입을 수의를 살 돈마저 남지 않았다.

그의 자식들은 그의 임종을 보러 오지도, 그의 장례식에도 오지 않았다. 죽기 직전 그는 후회한다. 너무 딸들을 오냐오냐 키웠다고. 죽기 전에 유산을 물려주는 것이 아니었다고. 우리나라에도 유산을 물려주고 자식에게 버림받아 소송을 통해 다시 돈을 돌려받은 분쟁 사례가 있다. 유산을 상속받은 자식이 부양을 의무화하게 하는 법안도 존재한다. 하지만 가장 좋은 것은 최후까지 재산을 쥐고 있는 것.

이것이 가장 중요한 교훈이다. 1800년대의 프랑스의 허영이나 젊은이가 성장하는 것 따위가 무슨 중요한 이유가 있나. 삶을 살아가면서 꼭 알아야 할 지혜는 바로 이것인데.


Books – 고리오 영감 – 오노레 드 발자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