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31일 ‘13주차 일상정리’
월요일
오늘은 동미참 훈련을 받으러 가는 날이다. 나는 2017년에 전역했기 때문에 올해가 예비군 2년차이고, 지난 주에 받은 동원훈련이 2년차 훈련이었다. 오늘부터 목요일까지 참여하는 훈련은 1년차 훈련을 연기해서 올해로 넘어온 것이다. 2017년까지는 3일의 동미참 24시간과 작계 12시간을 실시했는데, 2018년부터는 4일의 동미참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내가 있는 역삼동에서 예비군 훈련장까지는 아침 시간에 20~25분 정도가 걸린다. 8시에 택시를 불러서 5분 정도에 탑승했는데 30분에 주차장에 도착했다. 택시를 타고 올라오는 길에 버스 정류장이 보이는데, 정류장에서 상당히 올라가야 예비군 훈련장이 나온다. 입구를 9시까지 통과해야한다고 한다. 분란을 막기 위해서 초단위 시계까지 앞에 크게 걸어두었다. 그 이후에는 연병장에서 복장검사와 신분증 확인을 하고 더 위쪽에 있는 예비군 훈련장으로 5~10분 정도 걸어가야한다.
방탄모와 요대를 받은 후에 내가 속한 동으로 가서 접수를 했다. 분대는 도착한 순서대로 배정된다. 빨리 도착한 사람은 훈련 시작까지의 대기시간이 길지만 퇴소할 때는 앞 순번 분대부터라 빨리 가고 싶다면 일찍 가는게 차라리 낫다. 여러 ‘동’을 묶어서 한 반을 구성하는데, 한 반에 대략 10개 정도의 분대가 있다. 분대가 편성된 후 식당으로 이동해서 자고 있으면, 다른 분대가 모두 들어온 이후에 교관이 설명을 시작한다. 오전 오후에 5개의 과제와 1회의 안보교육을 받으면 끝이다. 성적이 탁월한 상위 30%의 분대는 4시에 조기퇴소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잘해도 남이 못하면 답이 없고, 배점도 딱히 객관적이진 않아서 욕심을 가지지 않는게 낫다. 내 경우에는 사격, 경계근무, 화생방, 수류탄, 구급법을 과제로 받았다.
동원 예비군에선 뭐 하나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고 시키는 것들이 태반이었는데, 동미참은 남는게 시간이다보니 설명을 참 자세하게 해준다. 동미참 과제들은 정말 빠르게 하면 1시간안에도 다 끝낼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은 대기 시간으로 흘러간다. 그래도 대기하는게 빡세게 훈련하는 것보다 훨씬 좋다. 점심은 외부 도시락 업체를 선정해서 제공되는데, 2가지 메뉴 세트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동원 훈련 때 먹었던 쓰레기 식단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맛있다. 편의점 도시락 수준 정도라고 보면 된다. 대기 시간에만 익숙해진다면 시간은 정말 잘 흘러간다. 4일 연속으로 회사를 빠질 수 없는 사람이 아니라면, 동원 훈련을 선호하지는 않을 것 같다.
오늘도 끝나고 바로 택시를 불렀다. 카카오 블랙을 또 부르기에는 부담스러워서 일반 택시를 불렀는데, 그래도 나름 잘 오는 것 같다. 집에 돌아오니 5시 20분 쯤 된 것 같다. 내일 또 가야하긴하지만 그래도 7시간 이상이나 자유롭게 일상 생활을 할 시간이 있으니 정말 여유롭다. PC방에 가서 게임을 좀 하다가 집에 돌아와서 일을 조금하고 아내와 통화를 하고 잠에 들었다.
화요일
오늘 훈련도 어제와 다를 것이 없다. 마치 같은 날의 반복과 같았다. 사격 훈련이 통신 훈련으로 변경된 것을 빼면 큰 차이가 없다. 오늘도 밥은 나쁘지 않았고, 여전히 날씨가 추웠다. 미세먼지가 ‘나쁨’이었지만 훈련은 취소되지 않았고 대신 마스크를 지급했다. 마스크를 쓰면 안경에 김이 서려 나는 안경을 쓰지 않았다. 끝날 때쯤 되니 목이 아팠다.
집에 돌아와서 그간 밀린 일기를 썼다. 최근에 일을 며칠 동안 집중하지 않아서 그런지 공상들을 하기 시작한다. KickStart 풀이를 포스팅 할 생각인데, 이미 공식 홈페이지에서 해설 자료는 내놓고 있지만 코드까지 들어있지는 않아서 대회를 준비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조금 누워있다가 와이프랑 통화를 하고 일을 조금 하고 나니 어느새 시간이 12시가 넘어간다. 하루하루가 정말 빠르게 흘러간다.
수요일
동원 미지정 훈련이 3일에 접어들었다. 오늘은 미세먼지 나쁨으로, 혹시 훈련을 안하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훈련장으로 향한다. 난 역시 운이 좋다. 모든 야외 훈련이 실내교육으로 대체되어 2개 정도의 실내 실습을 빼고는, 쭉 영상만 보다가 교육을 마쳤다. 이제 내일이면 이 지긋지긋한 짓도 끝이고 김해로 내려가 아내와 함께 주말을 보낼 수 있다. 주말엔 벚꽃을 보러가야하니 내일까지만 날씨가 나빴으면 좋겠다.
집에 돌아오니 오후 5시로 회사에 출근할 때보다도 일정이 널널하다. 8시까지 PC방에서 친구와 게임을 하다가 8시 30분에 영어회화 화상수업을 들었다. 아직 내 영어실력이 한참 모자란 것 같다. 일단 내 목표는 매 수업마다 교정받은 부분들을 모두 고치는 것이다. 새로운 단어나 표현은 수업을 듣지 않는 날에 공부해야겠다. 나도 얼른 영어가 유창해져서, 다른 외국인들과 좀 더 즐겁게 소통할 수 있으면 좋겠다. 말이 자유롭지 않으니 아무리 노력해도 소심해지는 것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오늘은 지난주까지 쓴 일기를 모두 영어로 바꿨다. 이번주부터는 영어 버전 일기를 먼저 쓰기로 했는데, 다음주부터 시작해야겠다.
목요일
훈련 마지막 날이다. 미세먼지 수치는 어제보다 나쁘다. 실내훈련을 기대하고 훈련장에 갔건만, 야외 훈련을 실시한다고 한다. 자체 지침을 가지고 훈련 유무를 결정한다는 교관의 말에 신뢰가 가지 않는다. 모든 수치가 어제보다 나쁜데 어떻게 어제도 아니고 오늘 야외 훈련을 한단 말인가. 3월이 끝나고 4월에 접어드는데도, 꽃샘추위인지 날씨가 무지 춥다. 실제로 훈련하는 시간은 얼마되지 않아서, 대부분의 시간을 벌벌 떨면서 보냈다. 그 와중에 두통이 심해서 타이레놀도 두 알 받아먹었다. 이제 일과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익숙해서 나름 시간이 잘 간다. 어쨋거나 오늘이 올해의 마지막 훈련이다.
내년에도 합숙대신 출퇴근 훈련을 받으면 좋겠다. 오늘은 김해에 가는 날이다. 생각보다 일찍 훈련이 끝나서 5시 50분 버스를 탈 수 있게 되었다. 4일 동안 온종일 앉아서 대기하다가 4시간 반짜리 버스에 또 앉아있으니 정말 지긋지긋하다. 그래도 사람없는 버스라 의자도 맘대로 뒤로 젖힐 수 있어서 편히 자면서 올 수 있었다. 아내는 내일 출근이고 나도 내일 일을 해야해서 일찍 잠에 들었다. 김해는 서울만큼 춥지는 않다. 벚꽃도 벌써 예쁘게 피었다. 토요일엔 아내와 함께 연지공원에 놀러가야겠다.
금요일
예비군 훈련 덕분인지 오늘 아침에도 7시에 자동으로 눈이 떠졌다. 12시에 잠들고 7시에 일어나는게 내가 바라던 최고의 수면 패턴인데, 이참에 꼭 습관으로 만들어야겠다. 아침을 먹고 일을 좀 하다가, 10시에 화상영어수업을 들었다. 매일 교정받는 부분만 모아서 꾸준히 연습하면 분명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오후엔 계속 일을 했는데 역시나 회사에서 하는 것만큼 효율이 좋지는 않다. 퇴근한 아내와 함께 저녁을 먹고 연지공원을 산책했다. 김해는 서울보다 날씨가 따뜻한지 온 사방에 벚꽃이 만개했다. 연지공원은 나름 사람들에게 유명한 관광지인 모양인데, 요즘은 레이저 분수쇼 같은 볼거리도 제공하고 있다. 나는 홍콩에서 레이저 쇼를 본 다음에 이걸 봤는데, 크게 차이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둘 다 노잼이다. 정말 봄이 오고 있는지, 이 넓은 공원에 커플들이 한 가득이다. 교복을 입은 커플들도 많이 보이고, 아이를 업은 부부들도 많이 보인다.
김해는 참 평화롭다. 사람들이 너무 적지도 않고, 너무 많지도 않은 적당한 수준이다. 좋은 일자리만 있다면 참 좋을텐데, 공무원을 빼면 좋은 일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은게 참 아쉽다. 아내를 집에 데려다주고 잠시 친구들을 만나러 다시 밖으로 나왔다. 그 중 한 명은 고등학교 졸업 후에 10년만에 만나는 친구다. 친구 네 명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서로 하다가, 문득 오랜만에 고등학교에 가보자는 이야길 했다. 오랜만에 찾아간 학교는 조금 변했지만 크게 달라진 점은 없었다. 학교 앞 순대볶음집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편의점이 생겼다. 예전에 없던 펜스가 생겼는데, 지각생들이 자주 이용했는지 누가 펜스를 구부려서 널찍한 틈을 만들어놓은 흔적도 있었다. 신기하게 늦은 시간에도 정문이 개방되어 있었다. 이제는 운동장도 잔디구장으로 바뀌어서 예전처럼 운동하다가 바닥에 넘어져서 크게 다칠일은 없을 것이다. 학교 건물들은 다 그대로였다. 친구 말처럼 초등학교는 다시 방문했을 때 작아보였는데, 고등학교는 우리가 더 이상 커지지 않아서 그런지 옛날과 똑같이 느껴졌다.
토요일
새벽 2시에 잠들어 아침 9시에 눈을 떴다. 7시간 수면이 앞으로도 유지될 수 있으면 좋겠다. 막상 일찍 일어났지만 오늘 하루는 잉여롭게 보냈다. 김해에서의 일상은 잉여롭고 여유롭다. 아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적다보니 이 시간을 더 휴식처럼 보내고 싶은 마음이 크다. 저녁이 되어서는 오랜만에 가족식사를 하고 알고리즘 스터디 자료를 준비했다. 이번주 월요일에 넘겨줄 것들이었는데, 깜박 잊고 있었다. 앞으로는 일기에서 일상적인 부분들은 최대한 간략히 서술하고, 중요한 일이나 느낌을 강조해보려고 한다.
글쓰기 모임은 결국 탈퇴했다. 원래 가입 목적은 다른 문체를 배워보자는 건데, 생각했던 것과 모임 방향이 좀 달랐다. 혼자하기엔 한계가 있어 오픈컬리지 같은 곳에서 다른 모임을 찾아보려고 한다. 책을 좀 읽어보려고 E-book을 둘러보던 중에 교보문고에서 제공하는 SAM이라는 서비스를 발견했다. 월마다 일정 금액을 내면 무제한으로 책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다. 금액도 저렴해서 결제를 했는데 참 낭패다. 일부 도서만 SAM에 해당하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컨텐츠가 부실해도 너무 부실하다. 출판시장이 아무리 불황이라지만 떨이로 묶이는 책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나도 내년 쯤에는 책을 써보는게 꿈인데, 이런 떨이 취급을 받지는 않도록 잘 써봐야겠다.
일요일
참 시간이 빠르다. 목요일 밤에 내려왔지만, 아내는 금요일까지 출근하기 때문에 같이 보낼 수 있는 시간은 목요일 밤, 금요일 저녁, 토요일, 일요일 오전이 전부다. 다 합쳐봐야 시간상으로 이틀이 채 안된다. 앞으론 월요일에 반차를 쓰고, 월요일 아침에 올라가는 걸 생각해봐야겠다.
버스를 타면 항상 선산휴게소까지는 잘 자는데, 이상하게도 선산휴게소부터 잠이 안온다. 고속터미널 역에서 우리집까지는 걸어서 1시간이다. 운동삼아 터미널에서 집까지 걸어서 오려했는데 날씨가 너무 추워서 지하철을 탔다. 영어 작문 수업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서 밀린 청소를 끝내고 이번 주의 일기를 완성하고 잠이 들었다. 내일은 꼭 7시에 일어나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