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14일 토요일 (게으름은 능력부족)
게으름은 능력부족
옛날에는 오늘이 ‘파이데이’라 초코파이를 먹어야 한다는 농담이 간간이 보였는데, 코로나 때문인지 지금은 그런흔적도 없다. 나라 전체가 우울로 가득차 있는 것 같다. 오랜시간 아내와 함께 있을 수 있다는게 유일하게 좋은 점이다. 같이 있을 수 있다는게 좋긴하지만, 서울에서 둘 다 좋은 일자리를 가지기는 쉽지 않다.
모름지기 자기 자신을 믿어야하지만 역설적으로 자신을 맹신하면 안된다. 자신을 믿어야 한다는 건 스스로에게 자존감을 불어넣어줘야 한다는 말이다. 자신을 맹신하는 건 렙차와 템차이를 계산하지도 않고 맞다이를 치는 것과 같다. 그렇게 완벽하게 계산하지 않아도 될 일들에는 문제가 없겠지만 완벽히 계산해도 될까말까 한 일에서는 반드시 문제가 발생한다. 자신이 가진 성격과 습관을 파악하면 스스로를 더 잘 통제하고 능력을 높일 수 있다.
타인을 관리할 때에는 능력밖의 일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여기서 타인의 ‘능력’이라는 건 뭔가. 능력은 뛰어나지만 게을러서 하루에 2시간 이상 일하지 못하는 사람의 능력은 어느 정도일까. 단 시간에 순간적인 폭발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 아니라 적당한 난이도의 일을 쭉 밀고 나가는 업무에서는 이 사람이 그다지 유능하다고 말할 수 없다. 즉, 하루에 2시간 밖에 일하지 못하는 게으름도 능력이다. 그래서 게으름을 극복하는 것도 자기계발이다.
성격이나 습관을 바꾸는 일은 쉽지도 않고, 타인이 그렇게 하기는 더 힘들다. 그래서 강제적인 수단을 동원하는 경우가 많다. 매일 미팅을 통해 작업량을 체크하거나, 혹은 매 시간마다 진행상황을 물어본다든지 말이다. 이런 절차는 비용이 소모한다. 비용이 효용을 넘어버리면 더 이상 의미가 없다. 허점이 많아 빠져나갈 구멍이 많은 감시는 요식행위로 전락해 효용은 없고 비용만 가중시키는 저해 요소가 된다.
감시가 완벽해진다면 최소한 형식적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의지가 약해 공부를 못하는 아이를 스파르타 기숙 학원에 보냈다고 하자. 수면과 식사 외에는 모든 시간이 수업과 자습이며 핸드폰 사용이 불가능다고 가정하자. 적어도 여기에 있는 동안에는 핸드폰을 쓰지 못하고 게임이나 유튜브에 빠지지 않고 정해진 시간에 책상에 앉아있어야 한다. 그 결과가 성적의 상승으로 이어지는 건 보장될 수 없다. 이 부분이 감시의 한계다.
성적의 상승을 위해서 어떤 관리를 해야할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공부는 본인의 의지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꾸준히 영어를 강제로 배워왔지만, 30점을 받았던 내 영어 성적과 억지로 배운 한자 중에서 내 이름 석자만 기억하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동생은 다행히 미약하지만 의지는 있다. 그래서 내가 도울 수 있는 최선은 나약한 의지력 때문에 수험생활을 망치는 걸 방지하는 것 뿐이다. 유튜브나 게임에 빠져서 시간을 허비하고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생활을 방지하는게 고작이다. 그래도 가망이 없다면 지금까지 들어간 돈을 알바나 시켜서 회수하는게 낫다. 공부가 적성이 안맞으면 빠르게 다른 길을 알아보는게 낫다. 뭘 해도 능력이나 절박함 둘 중 하나가 없으면 안되겠지만.
2020. 3. 14. diary (한글) 의지 박약형 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