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1일 일요일 – Mountain View 생활 145주차
퇴사
7월 4일자를 기준으로 만 6년을 채우고 구글을 퇴사했다. 경찰에서 개발자로 전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코로나 때 가족들이 함께 살 수 있게 해주었으며, 나와 가족들에게 영주권과 시민권도 갖게 해준 정말 정말 고마운 회사다. 무엇이든 쉽게 싫증내고 지루해하는 내 성격으로 6년이나 회사를 다닐 수 있었던 것도 그만큼이나 회사가 좋은 곳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퇴사 과정은 간단하다. 퇴사 2주전 매니저에게 퇴사를 알리고, 마지막날 출입증과 노트북을 반납하면 끝이다. 마지막 급여는 입금이 아닌 수표로 날라왔다. 회사와의 관계가 이 수표를 마지막으로 끝난 것이다.
건강보험은 그 달의 마지막까지 유지된다. 따라서 월초에 퇴사하는 것이 그나마 괜찮다고들 한다. 회사에서 대신 내주던 핸드폰 요금은 계정을 내것으로 옮겨야 한다. 급여 기록이나 401k나 Health Equity 같이 회사 계정으로 접속했던 서비스들도 개인 이메일로 계정을 다 옮겨놓는다.
역이민
아내의 귀국 계획은 확정되었고, 나는 같이 가족을 따라 한국으로 갈 것인지 남을 것인지에 대해 결정해야했다. 사실 한국으로는 가고 싶지 않았지만, 아이가 자라는 순간들을 놓치면서까지 미국에 있을 수는 없었다. 모두가 미국으로 넘어오는 와중에 홀로 역주행을 하는 것이 참 싫었지만, 그러기에는 아내가 여기에서 혼자 아이를 돌보며 너무 많은 고생을 했다. 한 달 전에 한국으로 돌아간 아내는 복직하여 매우 만족스러운 한국 생활을 하고 있고, 차라리 지금 가족에게는 한국이 더 낫겠다는 생각을 한다.
언제 다시 돌아올까라는 생각에 나는 2년을 제시했지만, 2년후라고 우리가 돌아올 준비가 되어있을지는 모르겠다. 서로 다른 생활문화를 넘나드는 것은 적응하는데 상당히 시간이 걸린다. 더군다나 지금의 한국의 인프라는 미국 우리 동네보다 훨씬 좋은 편이니 2년후에 그런것들을 다 포기하고 돌아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나 또한 그 시기가 오면 이미 한국의 삶에 다시 적응해서 굳이 돌아갈 필요를 못 느낄지도 모른다.
커리어
커리어 측면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은 자살행위이다. 매우 과격한 표현이지만 나는 이 표현이 옳다고 생각한다. 어떤 분야 어떤 영역에서 일하건 미국은 한국보다 훨씬 많은 기회와 보상이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지루하고 고독하지만 베이로 넘어와서 다시는 돌아가지 않는다. 돌아가는 이들은 이미 원하는 만큼 도전해본 사람들이 대부분이거나 나와 같이 개인 사정이 있는 경우다.
그렇기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은 얼핏보면 실패해서 돌아온것이 아니냐는 인식을 주기도 한다. 모든 이들이 미국 취업 비자와 영주권을 위해 끝없는 줄에 서 있는데, 그 줄을 역행하여 한국으로 간다는 것은, 그것도 불과 3년만에 돌아간다는 것은 말이다.
리턴
한국에서 다시 미국으로 넘어오는 것도 막막한 일이다. 구글 경험은 취업시장에서 더 이상 보증수표가 아니다. 코로나 때 여러 빅테크 기업들이 Hiring Bar를 낮추며 엄청나게 많은 인력을 채용했고, 그 인원만큼이 2023년, 2024년에 해고되었다. 취업 시장에 풀린 절대적인 인원이 많기도 하고, 서류를 통과시켜놓고 보니 면접이 형편없는 경우가 많아 요즘의 추세는 단순히 이력서가 아니라 이력사항이 얼마나 JD에 맞는지 철저히 체크하는 추세이다. 일단 구직자가 너무나도 많다.
나야 영주권이 있기에 그나마 조금 수월하겠지만, 그럼에도 크게 대단한 것은 아니다. 이번에 이직을 나름 체계적으로 준비했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생각했던 서류 통과율과 실제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나는 거의 모든 회사에 다 면접을 볼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실제로 면접을 본 곳은 10군데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만약 아무도 모를 한국 회사에서 수년간을 일하고 돌아오려고 한다면, 얼마나 그 경력이 인정받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이전처럼 개발자 시장이 호황일 시대가 다시 올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도 있다. 점점 더 주니어와 중니어 포지션은 사라져가고 많은 기업들은 시니어 또는 그 이상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직
가장 높은 오퍼를 받은 곳은 메타였다. E5 포지션으로 팀 매칭 오퍼를 받았는데, 지역이 Bellevue라는 시애틀 옆의 동네였다. 알고보니 매우 신도시에 안전하고, 한국인도 나름 많이 산다고는 하지만 그대로 시애틀 옆동네라 비가 자주 내린다고 한다. 나는 비가 정말 싫다. 베이에서 그나마 아는 사람들이 조금 생겼는데, 또 다시 새로운 시작을 하는 것도 참 막막하고 가족들과 떨어져서 일년에 한 두번 보는것도 견디지 못할 것 같다 결국 가지 않았다.
결국 한국행을 선택한다고 했을 때 가장 좋은 선택지는 몰로코였다. 미국에 본사를 두고, 한국에 큰 엔지니어링 조직을 갖추고 있는 회사는 내가 알기로 몰로코와 쿠팡밖에 없다. 3년전 트랜스퍼를 고민할 때 둘 다 면접을 보고 최종적으로는 트랜스퍼를 결정했다. 한국 채용 시장이 얼어있지만 두 회사는 헤드카운트가 있었다. 이것저것 조율하고 따져본 다음에 면접은 몰로코만 진행했고, 최종적으로 합격했다.
몰로코는 다른 회사들에 비해 가장 늦게 면접을 봤기 때문에, 몰로코 면접때에는 이전 단계에서의 지식과 경험이 축적되어 있어서 훨씬 수월했다. 특히나 시스템 디자인은 excalidraw를 거의 모든 회사에서 공통으로 쓰기 때문에 툴 자체에 익숙한게 중요한데, 몰로코 면접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스템 디자인 인터뷰를 몇 번 겪어본터라 버벅이지 않고 잘했다.
구글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글로벌 트랜스퍼를 지양하고, 영주권 서포트를 중단했기 때문에 미국 트랜스퍼와 영주권을 노릴 수 있는 유일한 국내 기업은 몰로코 뿐이다. 내 경우는 영주권이 있으니, 트랜스퍼만 지원해줘도 정말 감사한 일이다.
미국 생활 정리
미국 생활 정리는 초기 정착만큼이나 번잡하고 힘들다. 일단 국외 이민이니 여기서 산 모든 가구며 물건들을 다 처분해야한다. 옷이나 중요한 것들은 이미 한국으로 다 보냈고, 나는 혼자 남아 모든 가구들을 팔아댔다. 이것도 너무 빨리 처분하면, 바닥에서 잔다든지 밥을 먹는다는지 하기 때문에 타이밍 조절이 너무 힘들었다. 킹사이즈 침대는 생각보다 너무 가져가려는 사람이 없어서 급기야 광고를 해서 겨우 가져갈 사람을 구했다.
한국에선 당근으로 하루만에도 다 팔 수 있지만, 미국엔 당근이 없으니 Meta의 Marketpalce를 사용했다. 여기는 매너 온도라는게 없기 때문에, 그냥 찔러보고 응답없는 사람이나 무작정 네고를 한다는지의 사람들이 많아서 파는것 자체가 스트레스다. 고작 10달러 벌겠다고 5-6시간을 기다리거나 메시지를 하는 일이 너무 소모적으로 느껴진다.
어찌저찌해서 가구는 다 팔고 이제 집은 완전히 텅비었다. 가족도 떠나고 혼자 텅빈집에 남으니 기분이 참 허전하다. 이제 남은 건 자동차 뿐이었다. 듣기로 자동차는 CarMax에 가면 1시간이면 팔 수 있다고 해서 자동차만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남겨두었다. 한국으로 가져가는 것도 고려해봤지만 국산이 아니면 관세가 너무 많이 붙고 국내에선 수리비도 많이 나온다.
이제 남은 것들은 인터넷 공유기를 Xfinity에 가져가서 해약하고, 코웨이 정수기를 철거하고, 자동차를 팔고, 자동차 보험을 해약하고, 아파트에서 최종 퇴거 점검을 받는 것들이다. 그리고선 금요일 오후 비행기를 타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다. 꼭 다시 돌아와서 146주차가 시작될 수 있기를.
형님 일전에 안부 댓글 달았던 ‘John’ 입니다. 엄청 큰 결정이 있으셨군요… 그래도 가족보다 중요한 건 없는거 같습니다. 좋은 선택지로 한국 돌아오신것 축하드리고 저도 형님이랑 같이 몰로코에서 일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나중에 같이 일할 수 있으면 정말 좋을 것 같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