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6일 일요일 – 서울 생활 149주차
과거의 나
나는 내가 쓴 일기를 다시 읽어본 적이 없다. 창피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할 것 같아서. 그리고 일기의 내용 자체도 진지하고, 재미도 없이 건조하다보니 읽다보면 기가 빨릴지도 모른다.
그래도 일기를 쓰던 시점의 나는 미래의 나에 대해서 상당히 궁금했을텐데, 그래서 어떤 질문들을 남겼을지도 모른다. 미래에는 어떤 모습인지,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지금 내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그때도 나아가고 있을지 궁금했을 것 같다.
그래서 문득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을 돌려줄 수는 없지만, 과거의 나에게 감사하며 미래의 나를 위해서 지금의 나도 무언가 남겨줘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감사한 순서를 보자면, 스트레스의 강도와 거의 일치하는 것 같다.
순위를 매기자면 가장 고생한 것은 20살의 나. 가장 외롭고 힘들었던 시기를 스스로 잘 버텨낸 덕분에, 대학은 엉뚱한 곳으로 갔지만 재수에는 성공할 수 있었다. 20살의 내가 그 시절을 이겨내지 못했다면, 그 이후의 모든 삶들이 만들어질 수 없었다.
그 다음으로 고생한 것이 32살의 나. 인생에서 가장 공포스럽고 하기 싫은 도전을 했다. 영어도 너무 힘들고, 외국인도 너무 힘들고, 대량 해고도 힘들고, 일마저도 재미없었다. 그래도 가족이 있었기 때문에, 20살의 나처럼 완전히 혼자는 아니었다. 이 시기를 버텨냈기에, 영주권도 간신히 얻었고, 영어도 업무를 할 정도는 늘었다.
그 다음은 29살의 나. 긴장되는 상황에서 멘탈이 무너지고, 뒷심이 부족한 스스로를 극복해냈다. 그토록 바라던 구글 엔지니어가 되거나 평생 경찰로 일하거나 완전히 다른 두 인생이 결정되는 시기였다. 이어지는 추가 인터뷰에 서울도 몇 번을 다녀왔고, 발령과 근무가 겹친 상황에서도 끝까지 멘탈을 잡고 견뎌냈다. 이 때, 정신적으로 도망쳤다면 평생을 후회했을 일이다.
그 다음으로 대견한 24살 4학년 2학기의 나. 이 시기의 나는 정말 대단했다. 대학원 파견을 위해, 내가 되어야만 하는 이미지를 그려냈고, 누구도 그것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증빙 자료와 추천서를 받아갔다. 누구에게 추천서를 받을 수 있을지. 그러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정말 정말 열심히 생각하고 계획하고 그대로 모두 이뤄냈다.
그리고 작년의 35살의 나. 작년의 나는 29살의 나와 비슷한 상황이었지만, 좀 더 전략적으로 행동했다. 그 덕분에 29살의 나와 다르게, 나는 더 많은 카드들이 있었고,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는 가장 최고의 옵션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과거의 나는 중요한 순간마다 많은 스트레스를 헤쳐내며 참 잘해왔고, 그 덕분에 지금의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이 있다. 지금도 나는 낯선 환경에서 힘겨워하지만, 미래의 나를 위해서라면 충분히 괜찮은 일이다. 내년 또는 그보다 먼 미래에 내가 어디에서 무엇이 되어 있을지 모르지만,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크게 감사할 수 있도록 잘해보자.
결혼식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이 지난 주 일요일에 결혼했다. 대학교에서 처음 만나 벌써 15년 지기가 되어버린 친구. 많은 흑역사를 함께 만들어가면서, 절대로 철들지 않을 것 같던 친구가 오늘은 어른처럼 보였다. 함께 인생을 보내며, 힘들고 고생했던 순간들도 많이 봐왔으니 이제는 정말 행복한 일들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나는 그다지 유익한 친구는 아니었지만, 앞으로도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친구로 남아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