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21일 토요일 – (고봉수 감독, 낭만극장, 에무시네마)

고봉수 감독

오늘은 ‘고봉수’ 감독의 영화를 보러가는 날이다. 고봉수 감독은 ‘델타보이즈’, ‘튼튼이의 모험’이라는 영화로 유명한 독립영화를 찍는 감독이다. ‘델타보이즈’는 200만원 정도의 예산으로 만들어낸 영화치고 정말 잘 만들었다고밖에 할 수 없는 작품이다.

이 감독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차에 새로운 작품 소식을 듣게 되었다. ‘고봉수 감독 단편선’과 ‘갈까부다’라는 영화 둘이 9월에 개봉했는데, 서울에도 상영관이 있어 각각 8시 20분과 10시 30분에 연달아 관람하기로 했다.

영화관은 ‘낭만 극장’과 ‘에무시네마’. 이런 극장이름을 얼마만에 들어보는걸까. 2001년 ‘화산고’가 개봉했을 때, 김해엔 상영관이 1개인지 2개인지 모를 좁아터진 극장이 있었다. 그 이름이 뭔지는 기억도 안난다. 그게 내가 처음으로 극장에서 본 영화였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금소리시네마’가 생겼었다. 2005년 CGV가 생기기전까지 김해 유일의 극장이었다. 14년전에 김해에서 멸종된 감성이 아직 서울에 있을줄은 몰랐지.

낭만극장

‘낭만극장’은 낙원상가 4층에 있다. 낙원상가는 종로를 오가면서 건너편으로 저기구나하고 보기만했지 들어가본 건 처음이다. 1층에는 공사를 하는 듯 분주했고, 입구 대부분이 막혀있었다. 당췌 어디로 가야 들어갈 수 있는지 알기 힘들었다. 건물 내부에서 들어간 후에도 엘리베이터를 찾느라 애를 먹었다. 이 근방에는 이 근방만의 독특한 냄새가 난다. 어떻게 표현할지 모르겠지만, 어릴적 기억속의 친근한 냄새가 난다.

극장에 도착하고 나서 나는 매우 당황했다. 극장 앞의 매표소에는 ‘10시부터 오픈합니다.’라는 안내문구가 적혀있었다. 아니 8시 20분 영화인데, 10시부터 오픈이라니. 매표소를 그냥 지나쳐 영화관으로 들어갔다. 아주 나이가 많으신듯한 관리자분이 계셔서, ‘고봉수 감독 단편선’을 보러 왔다고 말했다. 그 단편선 이름이 뭐냐고 물어보시는데, 그 단편선 이름이 ‘고봉수 감독 단편선’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시는가보다. 알고보니 그 극장엔 ‘갈까부다’와 ‘단편선’이 둘 다 상영중이어서 나는 ‘갈까부다’말고 다른 걸 보러온 것이라 했다.

이 극장은 자리 예매가 안된다. 현장에서 자리를 배정받는 건데, 문제는 네이버 예약을 했는데 예약 확인을 할 줄 모르시는 모양이시다. 결국 예약한 화면을 사진으로 촬영해가셨다. 텅 빈 극장에 나 홀로 들어갔다. 극장은 생각보다 훨씬 넓고 괜찮았다. 왠만한 강당보다 훨씬 좋다.

영화는 4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단편마다 스토리나 촬영 기법이나 표현이 조금씩 달랐다. 재밌는 부분도 있고, 지루한 부분도 좀 있었다. 어떤 부분은 일부러 의도했는지 긴장을 느끼게 하는 부분도 있었다. 전체적으로는 기대한만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고 나오니 9시 50분이다. 바깥에 어르신들이 점차 많아지기 시작한다. ‘낭만극장’은 정말 오래된 영화를 상영해준다. 대신 가격은 2천원이다. 2천원만 내면 어르신분들이 자신들이 젊은 시절 유행했던 영화를 볼 수 있게 해주는 곳이다. 자신의 젊음과 함께했던 영화를 노년에 보는 느낌은 어떤 것일까. 내가 50년 후에 ‘엔드게임’을 아내와 함께 본다면 어떤 느낌을 받을지 궁금하긴하다.

에무시네마

택시를 타고 ‘에무시네마’로 향한다. 이 곳은 1층은 카페로, 다른 층은 영화관을 포함한 컬처플렉스로 쓰는 모양이다. 역시나 관객은 나 혼자뿐이다. 3층에 있는 2관에 들어가 앉아서 영화를 기다린다. 상영관은 소극장보다도 더 작다. 10분 전부터 광고가 나오는데, 대형 영화관에서 나오는 것들과는 좀 다르다. 독립 영화도 있고, 그다지 블록버스터가 아닌 영화들도 많이 보인다.

두 번째 영화는 국악 다큐멘터리다. 진짜 다큐멘터리는 아닌 것처럼 보인다. 영화 말미의 심청가를 덜어낼 수 있다면, 국악 다큐멘터리가 아니라고 말해도 괜찮아보인다. 오히려 18살 차이나는 커플의 이별이 더 중심적인 주제로 보인다. 여자친구의 주변 친지와 가족 중에 다른 영화에 출연한 배우도 있는 걸 보니, 페이크 다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든다. 뭐가 진짜인지 알려주지 않으니 알 도리는 없다.

이 부분은 반복되는 장면들이나 인터뷰가 많아서 지루했다. 그 점이 장점이라면, 진짜 영화를 보고 있는 사람까지 저 사건의 당사자처럼 진이 빠진다. 감독도 결국 진이 빠져서 연인을 포기한 것처럼 보이니까. 감독이 여러가지 장르를 시도한다는 점에선 괜찮았지만 러닝타임이 좀 길었던 것 같다.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와서 점심을 먹는다. 아침에 먹다 남은 삼겹살과 카레를 먹는다. 먹고나니 잠이 쏟아진다. 낮잠을 너무 길게 자서 3시간을 잔듯하다. 5시에 일어나니 잉여인간이 된 것만 같다. 이대로는 안되겠다싶어 운동을 갔다. 주말엔 8시에 헬스장이 문을 닫는다. LOL을 좀 연습해야하는데 생각이 들어 친구에게 연락했다. 하다보니 친구들이 하나씩 붙어 4인 팟이 되고 새벽 3시까지 해버렸네. 큰일이다. 내일은 9시 정도에 일어나야겠다.


2019. 9. 21. diary (한글) 고봉수 감독, 낭만극장, 에무시네마